[단독] “北정찰총국 한국인 납치조, 옌볜서 체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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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통 “2015년 3월 납치 시도 5∼8명 中공안에 잡혀 구금중”
“中지도부에도 보고, 北은 부인”… 외교갈등 비화 가능성

북한 정찰총국 소속 해외 암살 및 납치 공작조가 올 3월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가려다 중국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옌볜의 정통한 소식통은 “정찰총국 요원 5∼8명이 한국인 납치를 시도하다가 현재 지린 성 모처에 구금돼 있으며 소속과 직책, 관련 작전 내용을 전부 중국 측에 자백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납치는 정찰총국과 국가안전보위부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측됐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영철이 총국장으로 있는 북한 정찰총국과 김원홍이 부장으로 있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한국인들을 경쟁적으로 납치하고 있다”며 “이번 일도 김영철이 김정은에게 납치 공적을 보고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 간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김영철과 김원홍 모두 중국에서 한국인을 납치한 뒤 김정은에게 ‘공화국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던 간첩을 잡았다’고 과장 보고해 공을 인정받으려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3년부터 중국에서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 한국인을 납치 또는 북한으로 유인해 억류했다. 이들은 모두 몇 달 뒤 북한 TV에 출연해 한국 정보기관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에 납치될 뻔한 한국인도 선교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의 납치 사건은 북한과 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옌볜 소식통은 “북한은 이번에 공작원들의 존재를 부인하며 방치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중국 지도부에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과거 자국 내에서의 북한 공작조의 활동을 눈감아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작조 전원 체포를 통해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분명히 보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냉랭해진 북-중 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영철 ‘한국간첩 납치’ 공 쌓으려 무리수” ▼

북한이 중국에 보내는 납치 요원들은 최정예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공작원은 국경 지역에서 한국인과 탈북자를 상대로 위압감을 조성하는 이른바 ‘위세조’와 암살 또는 납치를 전문으로 하는 ‘납치조’ 등 크게 두 부류다. 이번에 중국 당국에 체포된 이들은 납치조다. 요원 대다수가 특수훈련을 받고 조를 짜서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전해졌다.

대북 소식통은 “이번 사건으로 북한 요원들이 중국에서 한국인들을 납치해 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잡혀 김영철이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철(사진)은 김정일이 통치하던 당시 인민군 정찰국장으로 지내며 김정은에게 군사 관련 개별 교습을 해준 인연으로 그의 눈에 들었다. 그 후 정찰국이 노동당 35호실과 작전부를 흡수해 정찰총국으로 되던 2009년 5월 당시에는 정찰총국장을 맡았다. 당시 대북 전문가들은 군 정찰국이 노동당 소속의 거대 해외 공작조직을 흡수한 것은 의외라고 분석했다.

노동당 35호실은 1978년 최은희 신상옥 씨 납치, 1987년 KAL 858기 공중 폭파를 기획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부 역시 대남공작과 해외공작 모두를 담당해 왔다.

김영철은 정찰총국장으로 임명된 뒤 김정은의 신임을 받기 위해 크고 작은 도발을 일으켜 북한의 대표적 강경파 인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그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세 번 승진하고 두 번 강등당하기도 했다.

특히 김영철은 승진한 뒤엔 남한에 대한 도발을 기획해온 인물로 알려져 왔다. 2009년에는 정찰총국 소좌급 공작원 2명을 직접 만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보당국은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김영철을 지목했다.

김영철은 2010년 10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고 한 달 뒤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했으며 2013년 2월에는 개성공단 폐쇄를 주도했다. 지난달 21일에는 평양에서 외신기자들을 불러 지뢰 도발과 남한 확성기 포격 사실을 부인하고 남측을 위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8월 초 군사분계선(DMZ) 목함지뢰 도발도 김영철이 공작조 체포 사건을 수습하지 못해 궁지에 몰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철은 8월 기자회견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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