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광복 70년, 예술적인 추모 기념물을 세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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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홀로코스트 추모 전시물들
슬픔의 역사를 예술로 승화
日대사관 옆 ‘평화비 소녀상’… 제3자 공감하기엔 너무나 소박
진실 캐는 건 역사가들 일이나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는 건 韓日 예술가들의 책무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은 내가 방문해 본 장소 가운데 가장 울림이 큰 곳 중 하나다. 그곳은 유대인의 역사, 특히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겪었던 학살(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보여주고 일깨워주고 무엇보다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학살의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제3자임에도 그곳에서 우리는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고 역사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강렬한 체험을 유발하는 것은 충격적인 그림이나 필름보다도 차라리 ‘빈 공간들(Voids)’이다. 박물관 곳곳에서 만나는 텅 빈 공간들은 ‘인간성이 잿더미로 변한 사실’을 달리 표현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타워’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보라. 묵중한 검은 문이 닫히면 24m 높이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침묵의 공간에 갇히게 된다. 아득히 높은 천장에 뚫린 작은 틈으로 희미한 빛줄기가 가늘게 비칠 뿐이다. 마치 죽어 연기가 되어서만 저 빛의 틈새를 지나 이 암묵의 공간을 빠져나갈 것 같다.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전시물 중 하나는 샬레케트(Shalekhet·낙엽·사진)라는 이름의 조각물이다. ‘기억의 빈 공간’의 바닥에는 눈·코·입을 거칠게 뚫어놓은 크고 작은 강철 얼굴들이 만 개 넘게 깔려 있다. 처음에는 누구나 차마 이 얼굴들을 밟고 지나가기를 꺼린다. 곧 그 위를 걸어가노라면 그 얼굴들이 밟히고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오래전 죽은 사람들이 여기 쇳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그 가운데 유독 작은 얼굴은 마치 죽은 어린아이를 연상케 만들어 이상하게 가슴이 저리다. 이스라엘 출신 예술가인 메나셰 카디슈만(1932∼2015)의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유대인들뿐 아니라 폭력과 전쟁으로 죽어간 모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고통스러운 회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작품들을 꽤 많이 보았지만, 베를린 유대인박물관만큼 상념에 들게 하는 곳도 드물다. 사실 홀로코스트 기념 작품들을 대할 때면 소름끼치는 공포감에 떨게 하거나 과격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유대인들만이 세계 역사의 유일무이한 희생자라는 듯 그들이 겪은 고통을 절대화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피의 복수’를 외치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그와 달리 이곳의 전시물들은 그들의 고통을 제3자에게 무조건 들이미는 대신 인류가 겪은 비통한 폭력에 대한 깊은 반성을 유도한다. 슬픔 가득한 역사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쉽지 않은 성과를 이룬 것이다.

베를린 여행길에서 서울과 도쿄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웃 나라 국민에게 가했던 극심한 폭력 행위를 고발하고 반성하는 박물관을 자국 수도에 세운 적이 있는가? 오히려 하시마(端島·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보듯, 강제 징용돼 지옥 같은 삶을 강요당했던 이웃 나라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교묘히 숨기려고만 했다. 이것이 일본의 역사의식 수준인가, 가슴이 답답하다. 일본이 높은 경제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진정한 대국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이런 옹졸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를 되돌아보자. 예컨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일을 우리는 얼마나 충실히 했는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고 분노하지,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이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공감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것이 도대체 무슨 사건이었는지 알아보려 하고, 또 이를 계기로 우리의 삶과 역사의 의미에 대해 깊은 상념에 들게 만드는 것은 예술 작품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비 소녀상은 우리의 뜻을 모으고 작은 위로를 나누는 정도의 의미는 있겠으나 너무 조촐한 느낌을 준다.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슬픔과 고통을 길이 추모하고, 더 나아가서 온 세계 사람들이 평화에 대해 성찰하도록 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지난 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역사가의 본분이겠으나 그것을 한 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일은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 예술가들의 책무가 될 것이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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