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삼성 백혈병 조정위’의 이상한 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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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산업부
김지현·산업부
23일 발표된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조정권고안 요약본에는 딱 두 개의 액수만 명시돼 있습니다. 첫째, 삼성전자가 ‘1000억 원’을 기부해 사단법인 형태의 공익법인을 만들라는 것, 둘째는 이 가운데 ‘70%’를 보상재원으로 쓰라는 겁니다.

지난해 12월 조정위가 꾸려진 이후 지난 7개월간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기대했던 실질적인 보상금에 대해서는 “보상액의 구체적인 산정을 위해 필요한 사항은 공익법인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적혀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각자 정확히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등 보상금이나 위로금의 기준을 애매하게 해 논란의 불씨를 그대로 남겨뒀습니다. 보상금을 지급받게 되는 유가족의 우선순위 역시 추후 공익법인이 정하도록 했습니다.

2007년 처음 문제가 제기된 이후 지난 8년간 당사자들끼리 서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꾸려진 조정위가 또다시 핵심 쟁점 대부분을 공익법인의 판단으로 공을 넘긴 셈입니다. 공익법인이 이를 논의하기 위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또 다른 새 협의체를 꾸려야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섭니다.

권고안은 보상액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서술했지만, 공익법인의 권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공익법인은 시민단체 등 외부 출신의 이사 7명 외에도 상설사무국에 상근 임직원을 둘 수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삼성전자 사업장을 감독할 옴부즈맨 3명 이상과 상근·비상근 연구원도 뽑도록 했습니다.

이 조직을 운영할 기금은 어디서 날까요. 보상재원 70%를 제외한 300억 원입니다. 권고안은 300억 원을 △공익법인 운영 자금 △보상 외 공익사업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단들은 인건비 등 운영 자금은 기금의 이자 등으로 충당합니다. 하지만 이 공익법인은 보상금이 부족하면 부족액을 추가 조성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그럴 걱정도 없어 보입니다.

1000억 원이면 국내 건실한 중견기업의 연매출에 해당하는 큰돈입니다.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터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사용돼야 할 기금 가운데 무려 30%가 단순 소멸성 자금으로 쓰이도록 권고된 까닭이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김지현·산업부 jhk85@donga.com
#삼성#백혈병#조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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