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45세 테너, 日 103세 의사… 한일 화해를 노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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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테너’ 주인공 배재철씨, 히노하라 이사장과 아름다운 동행

20일 도쿄의 한 사무실에서 히노하라 시게아키 일본 성누가국제병원 이사장과 테너 배재철 씨가 8월 초 열리는 공동 행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20일 도쿄의 한 사무실에서 히노하라 시게아키 일본 성누가국제병원 이사장과 테너 배재철 씨가 8월 초 열리는 공동 행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그가 있는 곳에 언제나 내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둘이 하나의 몸이 돼 함께 평화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올해 103세의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일본 성누가국제병원 이사장은 20일 도쿄(東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테너 배재철(45) 씨의 손을 꼭 잡았다. 국적도 나이도 다른 둘을 맺어 준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이다.

히노하라 이사장은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전 총리의 주치의를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 의사였다. 하지만 1970년 3월 도쿄에서 후쿠오카(福岡)로 가던 중 탑승한 비행기가 일본 과격파 조직 ‘적군파’에 납치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이른바 ‘요도 호 사건’이다. 납치범들은 평양으로 가자고 했지만 기장은 기지를 발휘해 김포공항에 착륙한 뒤 평양이라고 속였다. 이를 눈치 챈 납치범들은 79시간 동안 대치한 뒤 운수성 차관을 인질로 잡는 대신 승객들을 풀어 줬다.

히노하라 이사장은 “도쿄로 돌아오면서 이제 내 목숨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배 씨는 1993년 동아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유럽의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오페라의 주역을 연이어 맡으며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2005년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 후 목소리를 잃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배 씨는 일본 팬들의 도움으로 교토(京都)에서 성대 회복 수술을 받은 뒤 극적으로 재기했다. 그는 “노래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잃은 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라며 “한번 그렇게 되고 나니 남은 인생은 덤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마지막 날까지 다른 사람들과 노래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연은 2014년 유지태가 주연한 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로 세상에 알려졌다.

히노하라 이사장은 2013년 102세 생일을 맞아 열린 축하 공연에서 배 씨를 처음 만났다. 배 씨의 노래를 들은 히노하라 이사장은 “이 정도로 신의 존재를 느낀 적은 없었다”며 감동했고, 이후 배 씨를 ‘마음의 벗’이라고 부르며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히노하라 이사장은 올해 5월 도쿄에서 열린 배 씨의 신작 발표 콘서트에서도 배 씨의 손을 잡고 무대에 함께 올랐다. 마지막 곡으로 히노하라 이사장이 작사 작곡한 ‘사랑의 노래’를 같이 불러 청중 2000여 명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8월 초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 상영 뒤 히노하라 이사장이 세계 평화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배 씨는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100세를 넘긴 나이에도 아직 정정한 히노하라 이사장은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면서 전후 70주년이기도 하다”며 “일본은 한국에 잘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씨도 “음악을 통해 양국 국민의 마음을 잇는다면 실타래처럼 엉킨 양국 관계도 풀리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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