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연수]서울대 공대의 자성 “번트만 노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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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에서 지나가는 학생 아무나 붙잡고 묻는다. “혹시 수능 만점 받았나요.” “예.” “옆 사람은.” “1개 틀렸어요.” 최근 TV 예능프로 ‘1박2일’에 나온 서울대의 모습이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 웬만한 고등학교에서는 전교 1등을 해도 들어가기 힘든 대학이다. 그러나 국제 경쟁력은 크게 뒤처진다. 지난해 영국 타임스고등교육(THE)의 세계대학순위에서 서울대는 50위였다.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는 물론이고 홍콩대나 호주국립대에도 밀린다.

▷서울대는 ‘최고의 인재들을 데려다 둔재로 만드는 곳’이다. 국내 최고라는 명성에 안주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산다. 서울대에는 2000명의 총장이 있다는 우스개도 있다. 전임 교수 2000여 명이 제각각 고집이 세서 개혁이 안 된다는 자조 섞인 유머다. “나라와 젊은이들이 이렇게 어려운데 동료 교수들의 안일함이 부끄럽다”는 서울대 교수들도 많이 봤다.

▷서울대 공대가 ‘2015년 백서―좋은 대학을 넘어 탁월한 대학으로’를 내놨다. ‘서울대 공대는 야구로 비유하면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 후 1루 진출에 만족하는 타자였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만루 홈런만 기억된다. 낮은 성공 확률에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반성이 담겼다. 단기 성과와 논문 수 채우기에 만족해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역량을 가진 교수라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임용되기 어렵고, 정년보장 심사 때 교수들 간의 온정주의가 크게 작용한다는 자기비판도 나왔다.

▷24년 만에 백서를 내고 좌표를 가다듬는 서울대 공대는 그나마 희망이 있다. 아직도 해외 이론을 수입하는 데 급급하거나 오래된 노트로 해마다 똑같은 강의를 하는 인문대와 사회과학대는 더 걱정이다. 김난도 교수는 올해 서울대 입학식 축사에서 “여러분은 승리자가 아니라 채무자”라고 말했다. “스펙이 아니라 지성의 성장을 위해, 좋은 직업이 아니라 조국의 미래를 위해 혼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신입생뿐 아니라 서울대 구성원 전부가 새겨야 할 말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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