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내수 단기충격 불가피… 금융시장 변동성 커질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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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긴축 반대’ 후폭풍]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亞증시 급락… 코스피 2000선 위험
기재부-韓銀등 잇달아 긴급회의
對그리스 수출 0.2% 불과하지만 사태 장기화땐 유럽 수출 타격
소비심리 다시 얼어붙을 수도

그리스의 유로존 긴축안 거부로 그리스 사태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면에 빠져들면서 당장 한국 경제도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당국은 6일 잇달아 긴급회의를 열고 그리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정부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위기가 남유럽 등 다른 국가들로 급속히 번지지만 않는다면 국내 경제에 대한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6일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것처럼 앞으로도 금융시장의 동요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소비와 수출 등 실물경제의 뇌관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하긴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스 사태는 한국 경제에 금융과 실물 양면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금융부문에서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고조됨에 따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졌을 때도 유럽계 은행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신흥국에 투자했던 돈을 대거 회수하면서 한국 증시에서 15조 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적이 있다. 지난달 말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주식 가운데 유럽계 자금은 약 29%에 이른다.

오승훈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그리스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좀처럼 방향성을 알 수 없어 시장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며 “방향성이 잡힐 때까지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증시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단기간에 코스피 2,000 선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리스 악재와 더불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엔화 약세에 따른 2분기(4∼6월) 기업실적 둔화, 중국 증시 폭락 등의 악재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부정적 영향이 생각보다 장기화하진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그리스와 유로존, 그리고 한국 경제의 상호 연결 고리가 예전과 달리 그리 긴밀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금융권이 그리스 기업 등에 빌려준 외화대출금과 유가증권, 지급보증 등을 합치면 모두 11억8000만 달러로 전체 외화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의 1%가량에 불과하다. 또 한국의 전체 대외 수출액 가운데 대(對)그리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0.2%에 머물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유럽 은행들이 들고 있는 그리스 채권, 한국에 대한 유로존 주요 금융회사들의 대출·투자액이 모두 예전보다 감소한 상황”이라며 “그리스가 전면 디폴트를 선언한다고 해도 유럽 은행들이 한국에서 재빨리 자금 회수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은 완전한 파국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그나마 긍정적이다. 비록 그리스가 지금은 ‘배 째라’ 식의 강수를 두고 있지만 결국 채권단과 구제금융 협상을 다시 진행하게 되고 어렵게나마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실물 부문에서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 문제가 장기화해 유로존이 흔들리면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한국의 대(對)유럽 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유럽연합(EU)이 차지하는 비중은 8∼9%에 이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그리스 하나만 놓고 보면 엄청난 문제가 아니지만 유로존 자체가 불안해지면 원화의 상대적 강세 때문에 수출에 타격이 있을 수도 있다”며 “비록 안전자산인 엔화가 강세를 보여 수출 여건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있지만 일본 정부가 워낙 엔화 약세 정책을 밀어붙이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내수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국 경제가 대외 변수에 매우 쉽게 흔들리는 만큼 경제주체들의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뜻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메르스로 6월 내수 지표가 워낙 나쁘게 나온 마당에 대외 불확실성마저 커져 소비심리의 추가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각종 경제연구기관들도 그리스 사태의 영향 분석에 분주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6일 보고서에서 그렉시트의 충격이 5개 분기 이상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성장률이 최대 2.7%포인트 하락하고 주가도 26.5%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성훈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그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예전 유로존 재정위기 때보다 작다는 견해도 있다”면서도 “그렉시트가 유로존이라는 거대한 실험의 실패를 의미하는 만큼 그 잠재적 파급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임수·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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