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종석]탈 없이 세상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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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위해(危害) 우려종.’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지만 국내에 유입되면 생태계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종(種)을 말한다. 환경부는 이런 종을 법에 지정해 놓았다. 위해 우려종을 국내에 들여오려면 반입 목적과 용도, 개체 수, 수용시설 등을 담은 반입 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해 우려종이 국내 생태계에 노출될 경우 대처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위해 우려종으로 지정된 건 모두 24종. 이 중엔 개미 한 종이 포함돼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일본, 북미 등에 서식하는 이 개미는 산(酸)을 내뿜어 다른 동물의 눈을 멀게 한다. 실명한 동물은 먹이활동을 못해 결국 굶어 죽는다. 이 개미는 절지동물,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공격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구상 100대 악성 ‘생태계 위해 외래 생물종’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이 개미 이름은 ‘노랑미친개미(옐로크레이지앤트)’. ‘노랑’은 개미 색깔(실제로는 옅은 오렌지색에 가깝다)일 테고…. 그러면 ‘미친’은? 어쩌다 붙은 이름일까. 이 개미는 대개의 개미들과 달리 앞서 가는 개미 꽁무니를 따라 줄지어 다니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지그재그로 돌아다닌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미친개미다.

누가 갖다 붙였는지는 몰라도 지독한 이름이다. 아무리 말 못하는 개미라지만 남들처럼 줄 좀 맞춰 다니지 않는다고 미친개미라니…. 생태계에 끼치는 해가 크다고 하니 ‘위해 개미’ 정도로 부르면 또 모를까.

뭔 밑도 끝도 없는 개미 얘기? 얼마 전 모시는 기관장의 외부 행사 인사말을 몇 줄 줄였다가 모가지가 날아갈 뻔한 후배의 얘기를 듣고 이 개미가 생각났다. ‘인사말을 좀 다듬으라’는 직속상관의 말을 들은 후배. “인사말을 다듬으라는데 좀 줄여도 괜찮겠죠?” 하고 같은 부서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의 대답은 애매했다. “글쎄, 말 그대로 다듬으란 얘기겠지.”

외부 행사 때 기관장의 인사말에 할애된 시간은 1분 30초. 수십 번을 읽어봐도, 제아무리 빨리 읽어도 5분이 넘더란다. 아무리 기관장 인사말이라지만 배정된 시간의 3배가 넘는 분량인데…. ‘다듬다’는 필요 없는 부분을 떼고 깎아 쓸모 있게 만든다는 뜻 아닌가. 후배는 인사말을 몇 줄 줄여 직속상관에게 넘겼다. 그랬더니 미친 놈 취급을 했다.

“다듬으라고 했지 누가 줄이라고 했어? 어디 건방지게 ○○님 인사말을…. 나는 이게 긴 줄 몰라서 안 줄이고 너한테 준 줄 아냐? 그동안 네 선임자들은 다듬으라고 하면 맞춤법, 띄어쓰기 정도 손봐 넘겼어. 네가 뭔데 ○○님 인사말을 마음대로 줄여. 미친놈.”

누가 봐도 ‘이건 아닌데, 이 길이 아닌데…’ 싶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라도 군말 없이, 앞사람들이 갔던 길을 줄지어 따라가야 탈이 없는 세상이다. 안 그러면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 고약한 세상이다. 불쌍한 후배.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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