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81년만의 대지진… 첫 귀국 104명의 ‘생지옥 50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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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호텔 무너지며 우리 숙소 덮쳐”

“끔찍” 한국인 부상자 3명 중 한 명인 박종권 씨가 28일 새벽에 귀국해 지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끔찍” 한국인 부상자 3명 중 한 명인 박종권 씨가 28일 새벽에 귀국해 지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네팔 대지진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한국인 생존자들은 고국 땅을 밟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팔을 떠난 뒤 예정보다 두 시간 지연된 28일 오전 1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승객 104명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공포감이 뒤섞여 있었다. 대지진 발생 후 출국할 때까지 네팔에서의 50시간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여진이 우려돼 숙소에 머물 수 없어 노숙도 감내해야 했다.

올 1월 네팔 토목공사 현장에 일하러 갔다가 지진으로 팔과 목을 다친 박종권 씨(40)는 “병원 대다수가 무너지고 생사를 오가는 환자가 많아 경상자는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이라지만 자가발전기가 없는 곳에서는 물과 전기도 공급이 안 돼 고통은 더욱 심했다.

일부는 참사 충격에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관광을 갔던 허미경 씨(53)는 “함께 있던 중국 소녀의 오빠가 매몰됐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이진희 씨(25)는 “맞은편 호텔이 무너져 내가 묵던 호텔을 덮쳤다. 건물 밖에 있어 천만다행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마 참사 후 첫 귀국 비행기에 오른 이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하루빨리 현장을 탈출하려는 생존자와 구호물자 수송이 몰리면서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은 아수라장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당초 5월 말에 귀국할 예정이었던 김정식 씨(67)는 “공항에서 7시간을 기다려 비행기표를 구했다. 사고로 다친 사람들 대신 얻은 자리라 마음이 불편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고국의 대지진 소식을 들은 국내 거주 네팔인들 역시 큰 충격에 빠졌다. 이들은 고국을 돕기 위해 모금활동에 나서는 한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설치했다.

한국 거주 네팔인들의 모임인 재한 네팔인협회가 추산한 국내 네팔인은 약 2만9000명. 네팔인협회장 비너트 쿤와 씨(43)는 “지진 소식이 전해진 뒤 전국 각지의 네팔인이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네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대부분 일용직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 직접 얼굴을 보고 의논하기 힘들지만 각자 거주지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 네팔 대지진 참사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모국의 아픔을 나누기 위한 행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한국에 머무는 네팔인들은 현지 전화나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게 가장 답답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쿤와 씨는 “성금을 송금해도 현지에서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네팔인들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겨우 가족과 친구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네팔인협회 관계자는 “네팔과 인연을 맺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보여줘 큰 힘이 되고 있다”며 “네팔의 엄청난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인천=박성민 min@donga.com·황성호 / 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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