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숙종]국내 싱크탱크 키워 좋은 정책을 얻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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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학 선정 글로벌 싱크탱크… 美 1830, 中 429, 日 108개… 한국은 수년째 고작 35개
공익 위한 아이디어 가치… 존중 인색한 우리 사회 풍토… 양질의 정책 생산 가로막아
국책기관 자율성 대폭 허용하고… 민간 연구참여 기회 늘려야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대학 시절 싱크탱크라는 말에 매력을 느꼈다. 생각이라는 지성적 단어가 탱크라는 무서운 무기와 조합된 묘함 때문이었다. 싱크탱크는 정책을 연구하고 옹호하는 비영리 기관을 통칭한다. 정책연구기관이라고 불러도 될 것을 굳이 싱크탱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군사적 조언을 얻는 두뇌집단을 이렇게 칭하면서부터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나 브루킹스연구소는 이 말이 사용되기 훨씬 이전인 1910년대에 설립되었다. 기원이야 어떻든 날로 복잡해지고 빨리 변화하는 사회문제들은 창의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전문적 싱크탱크들을 필요로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는 매년 글로벌 싱크탱크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2014년 전 세계에서 6681개의 싱크탱크가 지명되었는데 국가별로 보면 미국에 1830개가 몰려 있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모든 국제 문제에 관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풍토도 한몫 한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도 각각 429개와 108개가 올라 있다. 한국은 수년간 35개의 싱크탱크만이 지명되고 있는데 이는 실제 그것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국내 싱크탱크들이 연구물의 영문 발간 등 국제화를 게을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국내 싱크탱크 수는 알 수 없으나 수년 전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정치, 안보,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소는 16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설립한 기관이 34%, 시민단체가 만든 기관이 34%, 대학에 소재한 기관이 20%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기업이나 정당의 부설기관들이다.

서구와 비교할 때 한국 싱크탱크의 특징은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지배적인 반면에 민간 연구기관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출연한 국책연구기관은 50여 개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나뉘어 속해 있다. 1966년과 1971년에 각각 세워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나 한국개발연구원을 필두로 정부 부처들은 대부분 산하에 연구소를 한둘 갖고 있다. 정책 연구를 국책기관이 주도하게 된 것은 정부 주도 개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초기에는 정부 정책을 지원할 민간 연구소가 없어서였지만 나중에는 각 부처가 연구소를 두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이 국책기관들은 보통 연간 수백억 원씩을 쓰고 있어 예산 규모로 보자면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연구의 질도 그런지는 의문이다. 정부 부처들이 요구하는 연구 과제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특수한 주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기간 심층연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국책기관의 많은 보고서는 해가 바뀌어도 내용들이 비슷하고, 유관 부처의 정책 방향에 줄서기를 해 차별화되지도 않는다. 관료들마저도 이들의 보고서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면 정부나 국책기관이나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민간 싱크탱크들은 아직 공익성이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대부분 열악한 재정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업 부설 연구소들은 회사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연구 분야가 좁아 공익적 싱크탱크로는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들이 설립한 연구소들은 각종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지만 전문성이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교수나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연구소들은 독립성은 상대적으로 크지만 지속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국책이든 민간이든 우리의 연구기관들은 상호 간은 물론이고 공공정책에 관여하는 타 집단들과 별로 접촉하지 않는다. 싱크탱크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의 듀폰서클을 찾는 전문가, 관료, 의원과 보좌관, 언론인 등은 여기저기서 열리는 세미나에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한다. 이렇게 개방된 검증을 통해 좋은 정책이 걸러지고 싱크탱크의 평판이 형성된다.

좋은 정책은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하는 여건하에서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나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해왔다. 이제는 공익을 위한 아이디어의 가치를 존중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국책기관들에는 자율성을 대폭 허용하고, 민간 기관들에는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더 주자. 기부에 관심이 있는 재력가들도 서구의 많은 연구비지원재단(grant-making foundations)들을 벤치마킹해서 ‘아이디어 시장’을 만들어 보자. 공익을 위한 연구에 전념하고자 하는 유능한 인재는 많이 있다.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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