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신영]아직도 아득한 구제역 방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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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때로 비명은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찾아온다. 4년 전(2010∼2011년 겨울)의 내겐, 그게 후각이었다. 전문가들과 찾은 경북 안동의 한 축산농가에서였다. 구제역으로 긴급히 도살 처분된 수천 마리의 돼지가 근처에 묻혀 있었다. 임시 매몰지로 선택된 농가 옆 산비탈에서는 비릿하고 눅진한 냄새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세로 떠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돌린들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당시 구제역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낳으며 전국을 들쑤셨다. 가장 많은 지적은 도살 처분의 비인도적, 아니 비‘축’도적 측면에 대한 비판이었다. 전염병에 걸린 소와 돼지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농장은 물론이고 인근 농장의 가축이 몰살돼야만 하는 상황은 분명 문제가 많았다. 다음으로 많이 나온 지적은 환경 문제였다. 급하게 파묻힌 동물 사체가 부패하면서 내는 침출수가 다양한 방식으로 토양과 지하수를 더럽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여러 과학자를 취재하면서 대다수의 사람이 거의 주목하지 않던 두 가지 색다른 주장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구제역이 치명적으로 위험한 전염병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구제역에 걸린 소는 발굽과 입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흘리거나 잘 걷지 못할 수는 있지만 한 달 정도면 자연히 낫는다고 했다. 전염은 빠르지만 이 병으로 죽을 확률은 1% 미만이었다. 사람에겐 옮지도 않는다. 떼죽음을 일으키면서까지 박멸할 흉악한 병이 아니라는 거다. 또 하나는 전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침출수가 실제로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토양환경학자들은 생석회의 과도한 사용으로 사체는 썩지 못하고 침출수는 사체가 분해되기 시작할 몇 해 뒤부터 더 문제가 될 거라고 봤다.

두 주장은 나름의 주목을 받았지만 구제역이 잦아들면서 자연히 잊혀졌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3년으로 강제된 구제역 매몰지 발굴 금지 시한이 끝났다. 문득 생각이 나 당시 동행했던 몇몇 환경단체 활동가들에게 매몰지의 사후 상태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다들 다른 현안이 바빠 모니터링을 중단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쉬운 대로 언론 보도를 찾아보니 ‘썩지도 않은 사체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파편적으로 나왔다. 관련한 논문도 있었다. 꼭 사체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일부 매몰지는 추가 관리가 필요해 2년간 발굴 금지 기간을 연장했다. 구제역 사태는 3년 만에 쉽게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 다시 구제역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시작돼 지난주까지 110건이 넘게 발생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이달 12일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들 혀를 찼다. 4년 전 겨울 무려 145일 동안 그 난리를 쳤는데 방역 대책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백신 접종 등 도살 처분을 줄일 수 있는 예방정책이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내 바이러스로 만든 효과적인 백신은 아직 없고 연구할 인력도 부족하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까지도 연구할 수 있는 생물안전실험실(BL3)을 완공했지만 해당 바이러스를 확보하기가 까다로워 연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0년 이후에만 3조 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 초대형 사태인데 대응은 아직 촘촘하지 못하다. 돈도 돈이지만 농장주의 눈물과 산 채로 파묻히던 돼지들의 비명까지 매몰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ashilla@donga.com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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