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3월의 주제는 ‘정직’]<48>제값 주고 ‘착한 다운로드’를
지난해 5월, 취업준비생 서모 씨(28·서울 구로구)는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파일공유 프로그램인 ‘토렌트’를 이용해 소설을 다운로드한 게 화근이었다. 서 씨에게는 불법 파일을 공유한 혐의가 적용됐다. 토렌트는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동시에 업로드해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기 때문이다.
서 씨는 초범이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동시에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민사 소송을 하겠다며 100만 원에 원작자와 합의하자는 연락도 받았다. 취업준비생인 그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 더욱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로서는 혹시 취업에 문제가 될까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읍소한 끝에 합의금은 50만 원으로 줄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시험에선 결국 낙방했다.
불법 다운로드는 전 국민의 3분의 1이 이용해 봤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에 따르면 음악, 영화, 방송, 출판, 게임 등 5개 분야 콘텐츠의 온라인 불법 복제물 유통량은 2013년 기준 21억655만 개에 이른다. 2012년 18억4188만 개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불법 업로드는 적발 시 모두 처벌받지만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법적 처벌은 주로 회사에서 업무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 영리 활동에 관계된 것으로 한정된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다운로드해 집에서 감상하는 경우 등은 처벌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 현행 저작권법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지 않은 불법 복제를 처벌하지만 영리 목적이 아닌 사적(私的) 이용은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청소년 때부터 무감각하게 불법 다운로드를 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불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콘텐츠 이용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최근 법원이 웹하드에 영화 ‘초능력자’ 등을 불법 업로드한 누리꾼 63명에게 영화사에 20만∼1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영화사가 받은 배상금은 3480만 원에 불과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찬동 법제연구팀장은 “저작권법은 1986년 제정된 이래 큰 변화가 없어 온라인의 급격한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적 처벌 기준과 관계없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콘텐츠 이용은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불법 다운로드는 더 나아가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파괴한다. 국내 게임개발사 ‘손노리’는 2001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6억 원을 투자해 개발한 컴퓨터 게임 ‘화이트데이’를 내놨다. 그러나 출시와 동시에 불법 복제판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초기 판매량이 3000여 장에 불과할 때, 불법 다운로드는 15만 건으로 추산됐다. 손노리 이원술 대표는 인터넷에 이런 내용의 호소문까지 올렸다.
“구걸한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살 가치가 없다면 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살 가치가 없다면 하지도 마십시오. 제작자들이 노력한 만큼 최소한의 결과라도 얻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대답 없는 외침이었다. 결국 이 게임을 마지막으로 손노리를 비롯한 국내 게임업체들은 컴퓨터 패키지 게임 개발을 그만뒀다. 지금 그 자리는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의 게임이 채우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