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기종을 안중근 義士에 빗댄 北의 일그러진 인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9일 00시 00분


코멘트
북한이 어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테러를 가한 김기종을 안중근 의사(義士)에 비유해 스스로 테러지원 국가의 본색(本色)을 드러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미제의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의로운 행동이 테러라면 일제의 조선 침략에 반대해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처형한 안중근 등 반일 애국지사들의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의병조직인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조선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중근 의사와 김기종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폐적 이데올로기에 빠진 북한에서나 통용될 법한 궤변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김정은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엔을 상대로 총력전을 폈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18일에는 이슬람국가(IS)에 충성한다는 리비아 전사들이 콥트 기독교도들을 집단 참수한 것에 대해 ‘우리는 온갖 형태의 테러와 지원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1월에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대한 위로 전문을 프랑스에 보내고, 이달 3일에는 이수용 북한 외무상을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시켰다. 핵 개발과 인권 문제에다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으로 강화된 미국의 보복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피해나가기 위한 대응이었다.

그랬던 북한이 리퍼트 대사의 피습 사건이 일어난 뒤 10시간여 만에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는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내고, 모든 매체를 동원해 김기종의 테러를 ‘정의의 칼 세례’라고 미화하고 있다.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키리졸브를 비난하다가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이 터지자 연일 김기종 옹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눈앞의 한미 훈련을 흠집내는 데 바빠 테러 범죄에 대한 세계인의 분노를 망각하는 자충수를 둔 꼴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손발이 안 맞는 듯하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연합 군사훈련을 할 때마다 연례적으로 한미를 상대로 말대포를 퍼부어 왔다. 멋대로 핵실험을 하고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미 군사훈련을 트집 잡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일국의 대사가 당한 테러에 박수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로서는 할 수 없는 반인륜 행위다.
#김기종#안중근#비유#리퍼트#정의의 칼 세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