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强國으로]나일론… 플라스틱… 신소재가 산업 패러다임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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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나일론스타킹 첫선, 뉴욕서만 1시간에 400만 켤레 판매 신화
소재부품 강국 독일-일본, 장기불황에도 글로벌 시장서 막강 경쟁력

1939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은 나일론이었다. 이듬해 봄, 여성용 나일론 스타킹이 시장에 첫선을 보였을 때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미국 주요 도시의 관련 매장에서는 이 전대미문의 신제품을 사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뤘고 뉴욕에서만 한 시간 동안 나일론 스타킹 400만 켤레가 팔려 나갔다.

나일론의 원조 격인 실크 스타킹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보다 앞선 1920년대였다. 많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워낙 고가였던 탓에 ‘그림의 떡’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일론 스타킹은 실크 스타킹에 대한 수요를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단번에 인기 품목으로 급부상했다. 스타킹 열풍을 바탕으로 이후 나일론은 각종 의류제품에 사용되며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만족을 선사했다. 이 과정에서 나일론을 개발한 화학기업 듀폰이 돈방석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소재와 부품이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선도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나일론과 플라스틱이 1930년대 고분자혁명을 이끌었듯 인류사의 한 장을 그었던 1950년대 디지털혁명을 견인한 것은 집적회로(IC)였다. 랜카드가 1980년대 인터넷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무선통신 칩은 2000년대 유비쿼터스 혁명의 발단이자 촉매 역할을 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재란 특정 기능을 좌우하는 핵심물질을 말한다. 금속, 화학, 세라믹, 섬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부품은 독립적인 기능 없이 결합을 통해 특정 부문에 쓰이는 물품으로 톱니바퀴, 칩, 기어, LED램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동안 완제품에 가려 반쪽짜리로 밀려나 있던 소재와 부품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획기적인 소재부품은 산업의 변혁을 유도할 뿐 아니라 인간생활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한다.

산업적 측면에서 소재부품은 무엇보다 완성품의 고부가가치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스틸 소재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자전거의 중량이 평균 17.5kg에 달하는 데 비해 탄소섬유 복합소재로 만든 자전거의 무게는 대략 8.5kg이다. 절반 이상 ‘체중’을 줄인 경량화의 결실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낳는다. 완제품 스틸 자전거 가격이 평균 10만 원대에 그치는 반면 탄소섬유 자전거는 대당 350만 원을 호가한다. 가격 차이가 무려 35배나 된다.

소재부품에 주목해야 할 큰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확장성과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다. 나일론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듀폰은 소재 분야의 특허기술인 폴리이미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내연필름과 전선 코팅재, 층간 절연재, 인쇄회로 기판 등 다양한 응용기술로 영역을 확장해 오고 있다. 이들 응용기술은 최종적으로 자동차와 조선, 우주항공,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분야의 완제품 생산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해당 완제품 시장에서 듀폰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광범위한 확장성 때문이다.

소재부품 산업은 또한 경제 전반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대부분 소재와 부품 분야의 강소기업으로 이뤄진 히든 챔피언 기업을 1300개 보유하고 있는 독일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일본도 ‘모노쓰쿠리 정신’(좋은 물건을 만들려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재부품 분야의 탄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20년 장기불황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침체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도 소재부품 산업의 지속적인 무역흑자 확대가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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