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주엽]일하는 문화 개혁과 시간선택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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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163.

우리 근로자들이 한 해 동안 일하는 근로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70시간보다 393시간을, 1380시간 일하는 네덜란드보다 783시간을 더 일한다. 오래 일하는 관행은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부산물이다. 근로자는 고속 승진하기 위해 야근과 휴일근무를 자처했다. 짧은 근로생애에 맞춰 집약적으로 일해야 하는 여건 때문에 장시간 근로가 고착되었고 남성 위주의 외벌이 문화와 ‘아빠 없는’ 가족 문화가 뿌리내렸다.

외환위기로 대량실업을 경험한 후 저출산과 빨라지는 고령화 속도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길어진 수명에 맞춰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랜 기간 일하며 행복해지려면 일하는 문화를 개혁해야만 한다.

정부는 주 5일제와 60세 정년에 더해 ‘고용률 70% 로드맵’에서 ‘일하는 방식과 근로시간 개혁’을 내걸었다. 핵심은 장시간 근로 개선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및 유연근로 확산이다.

그동안 공공부문에서 시간제 공무원, 시간제 교사 등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방안을 고민해왔고 민간부문에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왔다. 시간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시간 근로관행에 젖어 있는 현실에서 성과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가 시간제 일자리를 꺼리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두 사람이 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근로자는 낮은 임금 등 시간제가 갖는 부정적 특성 때문에 시간제를 꺼린다.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전일제만 가능할 때 시간제를 원하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든 불행해진다는 점이다. 누구는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불행하고 누구는 적정 수준 이상 많이 일해야 하니 불행하다. 다양한 사정으로 시간제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국민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부의 사명이다.

근로문화 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간제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전일제와 시간제의 자유로운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공무원을 예로 들면, 근로생애 30년 동안 자녀를 키우는 육아기, 승진을 위한 자기계발, 정년 즈음에는 인생 이모작을 위한 전직 준비라는 숙제와 마주한다. 일을 지속하는 방안은 전일제 대신 근무시간을 줄여 시간제로 일하는 것이며 근로생애의 10%는 시간제로 일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필요한 기간만큼 시간제로 전환하는 근로문화가 확산되면 일자리는 늘어난다. 인력의 유휴화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생산성도 높은 경제를 만드는 좋은 대안이 된다.

이러한 시간제 전환의 틀은 전환 사유가 해소되었을 때 전일제로 복귀해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공무원연금의 적용 여부도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 시간제를 따로 선발할 필요도 없으므로 현재 논의되는 ‘시간제 공무원’과 기존 공무원의 묘한 긴장관계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공공부문에서 이렇게 시간제 전환을 제대로 정착시키고, 이러한 제도가 더 낫다고 입증되면 민간부문도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될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먼저 근로문화 개혁의 방아쇠를 당겨 온 국민이 일과 삶의 조화를 통해 보다 행복해지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간선택제#근로문화 개혁#야근#휴일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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