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김밥 원조 논쟁’… 한-일 김 비교하면 답 나와[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일 22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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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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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요즈음 세계적으로 핫(hot)한 김밥의 역사가 ‘한국이 원조냐, 아니면 일본이 원조냐’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 이럴 때 만일 어느 대학 교수가 한자로 된 오래된 책을 들먹이면서 김밥 비슷한 글자가 일본의 기록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며 ‘김밥의 원조가 일본인 것 같다’고 말해 버리면 우리나라는 김밥의 원조가 일본이라고 다 퍼져 버리게 된다. 이렇게 우리 음식의 뿌리가 왜곡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예를 들면 일본어라고는 고스톱판에 ‘고도리’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일본에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인 ‘닭도리탕’이 일본말이라고 그럴듯한 이유를 들고 퍼뜨리니, 지식인은 한술 더 떠 왜색 언어를 탈피해야 한다고 하면서 볶음 과정이 전혀 없는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이라고 해야 한다고 해버렸다. 그러니 TV에서는 시골 할머니가 방송에서 ‘닭도리탕’이라고 말하면 친절하게도 자막으로 ‘닭볶음탕’으로 고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정상적인 음식 역사를 연구하는 풍토라면 문헌 연구도 중요하지만 제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김밥의 원료인 김밥김을 두 나라에서 다 생산하느냐’ ‘김밥김을 어느 나라에서 더 많이 생산하느냐’ ‘그러면 김을 언제부터 생산했느냐’를 따져봐야 김밥의 뿌리를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김밥김이 있으면 김밥 싸먹는 것은 높은 기술이 아니어서, 밥문화권에서는 누가 꼭 가르쳐주지 않아도 독립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알아내는 아주 쉬운 일이다. 오히려 김을 바다에서 수확하고 김밥김을 말려 생산하는 것이 지리적, 계절적, 기후환경적으로 까다로운 일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김을 생산하겠는가? 다름 아닌 김밥을 싸 먹으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다. 김 생산 통계와 역사를 분석해 보면 김밥의 어원이 일본이냐, 한국이냐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한국 김밥으로선 모욕적이다. 일본은 김밥용 김이 아니라 두꺼운 김조각으로 곁들여 먹었다. 최근 캘리포니아롤에 김이 들어가 소비되는 것은 한참 후의 일로 김밥의 역사에 영향을 줄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무관심 속에 매번 우리 음식의 역사를 농경학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한자를 아는 학자들만 하는 연구 영역으로 방치하다 보니 우리 음식에 대한 왜곡과 과학적인 오류가 매우 심화됐다. 가장 왜곡이 심화되고 엉터리인 분야가 김치와 장으로 대별되는 우리 고유의 발효음식 역사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민족만 먹는 김치를 ‘김치의 유래’가 어디라느니, ‘뿌리가 중국의 파오차이와 같지 않냐’ ‘언제 들어왔느냐’ ‘김치는 고대김치 현대김치가 따로 있었다’ ‘김치의 역사가 수백 년밖에 안 되었다’ 등 많은 잘못된 주장이 아직도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날에는 동식물 역사의 과학적 분석이 가능해져 인류가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각각 그 지역의 풍토와 지리적 특성에 맞는 고유의 농경 역사와 독자적인 음식이 탄생한 것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러한 과학적인 사실이 발견되기 전에는 어떤 음식이 특정 지역에서 탄생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음식 만드는 기술을 대단한 것으로 여겨 기술적 전파에 의해 음식이 발달했을 것이라는 틀린 주장이 먹혔었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한국#김밥#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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