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애슈턴 카터와 정밀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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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부장관이 차기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다른 어떤 요인보다 내정 시점이 눈에 들어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남짓 남은 데다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결의안 통과를 앞둔 시기라는 점에서다. 전자에선 8년 임기 중 후반기에 들어선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틀이 크게 변하기 어렵다는 예측을 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 압박을 고리로 핵실험을 하겠다는 노골적인 도발 의사를 밝힌 후자의 상황을 보면, 조만간 한반도 정세가 꽤나 민감하고 복잡하게 돌아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카터 내정자가 국방장관에 취임할 무렵에 북한이 핵실험은 물론이고 패키지처럼 딸려오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이런 바탕에서 볼 때 그가 국방차관보를 지낸 뒤 하버드대 교수 시절에 쓴 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북한이 1차 핵실험(2006년 10월)을 하기 전인 2006년 7월 5일 북한은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미사일 7기를 발사했다. 카터 내정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후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과 공동으로 워싱턴포스트와 시사주간 타임에 각각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설을 정밀 타격(surgical strike)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임지 기고문에선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중시하지 않으려 했다. 이라크전쟁에 매달린 관리들의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는 신중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고 질타했다. 북한이 한국에 보복공격을 할 수도 있지만 북한 정권의 신속한 제거로 이어질 것이고, 평양의 지도자들이 무분별하게 자멸적이지도 않다는 전제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당시 미국과 북한 핵문제를 담당했던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동 기고였지만 사실상 카터 내정자가 썼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강한 주장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고 전했다. 공화당 정권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미국은 대외관계에선 민주당과 공화당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정권의 바깥에서 북한에 대한 ‘정밀 타격’을 강조했던 그가 미국 국방부의 수장이 됐을 때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게다가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기지 발사탑 증축 공사를 최근 완료한 상태다. 자신이 쓴 글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곧 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과거에 쓴 글대로 행동할 것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이 백악관의 파워에 밀린 만큼 백악관이 주도하는 정책 결정 과정을 후임자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여력도 많지는 않다. 실제 공직을 맡은 뒤 현실적인 선택을 했던 관료들의 전례를 보면 그가 기존 정책방향을 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혼란한 현 시점에서 러시아라는 탈출구를 찾는 북한으로선 카터 내정자의 등장은 악몽이 될까.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러시아도 마냥 북한을 지원할 처지가 아닌 상황이어서 새로운 고민을 할 것 같다.

우리는 어떨까. 카터 내정자가 장관직을 맡으면 이슬람국가(IS), 이란 핵협상, 우크라이나 사태, 이스라엘 정정 불안 문제 등에 빠져 정작 한반도 현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한반도 문제가 불거지면 손쉽게 과거의 글을 떠올리고 대응할까 봐 걱정이다. 한국 정부가 카터 내정자의 민간인 시절 행보를 얼마나 많이 분석했는지, 그것도 우려된다. 그런 점에서 한미 양국이 한반도의 장래를 내다보는 신중하고 긴밀한 논의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애슈턴 카터#국방부#정밀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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