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태윤]금리 더 내려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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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2000년 1월 보스턴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당시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벤 버냉키 교수는 일본을 디플레이션과 장기침체로 이끈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을 비판한다. 그 내용이 후일 연준 의장으로 양적완화를 이끌며 미국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정책으로 실행될 것임을 알았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공황을 연구했던 버냉키에게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일본의 통화정책 실패는 대공황 당시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주춤거리며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보였던 패착과 다르지 않았다.

0% 내지는 1% 소비자물가상승률로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들어갔음에도 머뭇거리던 일본은행은 주택가격이 급락하자 1991년 이후 뒤늦게 금리를 낮췄지만 수세적이고 애매한 자세에 대해 시장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고, 그 결과 금리 인하 효과는 크지 않았다. 더구나 주택시장이 무너진 상태여서 뒤늦게 행해진 일상적인 금리 인하 형태의 통화정책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버냉키가 이끄는 미국 연준은 주택시장이 붕괴하기 전에 신속히 금리를 인하하고 전면적인 양적완화로 유동성을 공급하며 디플레이션과 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시장에 표명했다.

디플레이션하에서는 금리 인하 자체보다, 이를 통해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과 싸우고 일정 수준의 물가상승률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의지를 행동으로 표명해 정책 신뢰를 만드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버냉키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사라질 때까지 노력한다’는 과거 일본은행의 애매한 태도로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하고, 3∼4%의 물가상승률을 만들 때까지 금리를 인하하고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한다는 것처럼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이후 연준 의장으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양적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뚜렷한 수치를 제시했던 바탕이다.

우리의 최근 2% 이자율을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낮은 금리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흥미롭게도 ‘잃어버린 20년’ 당시 일본에서 동일하게 회자되던 내용이다. 심지어 자금 경색이 극심했던 미국 대공황 때도 명목이자율은 0%에 가까웠다. 그러나 수치상 이자율이 0%라고 완화적인 통화정책인 것이 아니다. 물가와 자산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면 0% 명목이자율하에서도 실질이자율은 높아 긴축적인 통화정책일 수 있다.

결국 소비와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핵심에는 미래에 가격 상승이 예측되어 지금 구매하고 투자하게 만드는 일정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현재의 0% 내지 1% 물가상승률은 유가와 농산물가격 하락 같은 공급 측면 때문이어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오랜 기간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된다면 공급 측면 때문이어도 부정적인 영향은 동일하다. 더구나 정말 공급 측면 효과라면 낮은 물가상승률과 함께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 이들이 부진하다. 결국 수요 감소에 따른 물가 하락과 경기침체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가계부채 위험을 지적한다. 물론 가계부채는 문제이다. 그런데 현재 가계부채는 소득 감소로 인한 생계형 부채가 문제로 오히려 소득을 증가시키고 금리를 낮춰 이자 부담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과도한 신규 부채 증가는 막되, 기존 채무 및 생계형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은 감소시키면서 실물경기를 회복시키고 소득을 높여 안정된 소비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요 부진을 타개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물가상승률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금리#일본#디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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