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귀로 말하는 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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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요즘 송화기(送話器)나 수화기(受話器)는 상당히 낯선 단어다. 장치가 아니라 부품의 형태로 전화 속에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송화기(transmitter)는 음성을 전기신호로, 수화기(receiver)는 전기신호를 음성으로 바꾸는 장치로, 알렉산더 벨이 음성통신 시대를 열었을 때부터 서로 다른 장치였다. 한 손으로는 송화기를 입에 대고, 다른 손으로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통화해야 했다. 전화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송화기와 수화기는 하나로 통합됐다. 송수화기(送受話器)의 형태다. 송화기와 수화기의 거리가 입에서 귀까지의 거리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그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송화기와 수화기의 거리가 휴대전화를 뺨에 대고 통화할 만큼 입과 귀의 거리보다 짧아졌다. 대략 휴대전화 길이만큼의 거리다. 한편으로는 수화 기능이 보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헤드폰과 이어폰이 등장하면서 송화기와 수화기의 거리가 다시 멀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송화기와 수화기는 그 거리가 점점 짧아지다가 마침내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통합됐다. 벤처기업인 해보라㈜는 최근 ‘이어폰 겸용 마이크’라 할 수 있는 이어톡(EarTalk)을 개발했다. 귀에 꽂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내 말을 전달할 수도 있다. 해보라는 스피커와 마이크를 귓구멍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합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잡음(Noise)과 하울링(Howling)을 해결했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기술벤처의 꿈이다.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대박’이다. 올 11월 이어톡을 출시하기도 전에 해보라는 이미 성공한 벤처처럼 평가받고 있다. 최근 10억 원 상당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포스코로부터 2차 투자를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또 현재 화웨이(華爲)나 샤오미(小米) 같은 중국의 대기업과 협력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으며, 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시작한 해보라는 정부의 지원제도를 두루 잘 활용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드림엔터사업을 비롯해서 중소기업청, 발명진흥회, 기업은행, KOTRA 같은 기관의 지원제도를 알뜰하게 챙겨 도움을 받아냈다. 반면 국내 대기업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식겁했다. 기밀유지협약(Non Disclosure Agreement)을 앞세워 기술을 빼앗으려는 대기업의 이빨과 발톱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중국에서 오는 협력 요청이 더 반갑다. 국내 기술생태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해보라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귀로 말하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성 원리를 살펴보면, 허파에서 내쉰 숨으로 후두에서 성대를 떨게 만들어 생긴 진동이 구강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입술 밖으로 나오면서 소리를 내게 된다. 입이 말을 하는 것이다. 입안은 콧속 귓속과 동굴처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성대의 진동은 코나 귀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해보라는 이어폰에 마이크를 심어 성대의 진동을 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귀로 말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 때 입과 귀를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시켜 두었는데, 해보라는 바로 그 내부의 공간에서 대화하는 법을 찾아냈다. 세월호를 두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여야는 ‘귀로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귀로 말하는 방법’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내부에서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 자꾸 입으로만 말을 하려고 할까?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휴대전화#미래창조과학부#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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