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시진핑과 박근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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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는 고통스러웠다.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 귀양 갔을 때 수시로 달려드는 모기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쳤다. 그는 ‘호랑이가 울타리 밑에서 울어도 나는 코를 골며 잘 수 있지만 모기가 왱 하고 달려들면 간담이 서늘하구나’라는 시를 남겼다. 유배 시절 서민의 질곡을 뼈저리게 체험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목민심서’를 써서 공직자의 길을 제시했다.

▷오늘 방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60년대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7년동안 시골에서 거주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문화대혁명은 학교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자본주의에 젖어 있다는 이유로 교사를 끌어내 얼굴에 먹칠을 하고 마구 폭행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공산혁명 세력의 일원이었으나 반(反)혁명분자로 몰렸다. 시진핑은 16세 때인 1969년 산시 성의 량자허라는 마을로 하방(下放)했다. 농촌에서 강제노동과 재교육을 받는 일종의 유배였다.

▷시진핑은 이때 스스로 다섯 가지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벼룩, 음식, 생활능력, 노동, 사고방식의 전환이 그것이다. 그가 사는 토굴에는 벼룩이 들끓었고 밥에는 쌀겨가 절반이었다. 나중에 그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털실로 양말을 짜고 옷을 깁는 생활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그는 여기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서민의 삶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시진핑은 친(親)서민적 이미지로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만두를 사러 긴 줄을 서고, 스모그가 심한 베이징 시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주민 생활을 점검한다. 시진핑과 만나는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 박정희를 흉탄에 잃은 뒤 오랜 시련을 거쳤다는 점에서 시진핑과 흡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시진핑과 달리 정치적 곤경에 빠져 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청와대 안에서 홀로 고립돼 불통(不通) 이미지를 주고 있는 탓이 큰 듯하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진실로 옳은 인재를 얻지 못하면 모든 일이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시점에 박 대통령이 새겨들을 말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시진핑#박근혜#문화대혁명#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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