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구현]한국 기업들이 늙어가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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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둔화, 과도한 인건비… 한국의 입지매력도 떨어져
2, 3세 경영 맞은 기업들은 기업가 정신 잃고 관료화
정부, 규제 과감히 풀고 기업, 대대적 구조조정 실시… 꺼져가는 경제동력 살려야

정구현 KAIST 초빙교수
정구현 KAIST 초빙교수
불황이 5년 이상 계속되면서 기업의 외형 성장이 둔화되고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세계경제는 아직도 정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2011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외환시장도 상당히 안정된 모습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는 부분적으로는 국내 경제의 침체를 반영한다. 투자가 부진하고 소비도 저조하다 보니 수입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업의 성과 악화의 원인을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입지매력도가 악화되고 기업가의 의욕은 저하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은 입지매력도가 높은 지역에 투자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국내 기업, 외국 기업의 구별이 없다. 한국은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입지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

첫째는 경제성장의 둔화이다. 경제가 이제 연간 2∼3%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사회적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의 지배구조와 사업에 대한 규제가 늘고 있으며, 특히 성공적인 기업에 여러 형태로 족쇄가 채워지고 있다.

국내의 인건비도 너무 높다. 한국 대기업의 대졸 초임은 대만의 3배이다. 금융이나 통신 등 웬만한 산업에서는 실무자의 급여가 미국 유럽의 수준보다 높다. 일부 강성 노조가 주도하는 대기업에서 생산성 이상으로 급여를 올려 주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초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내수 지향 대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 2년간 30대 기업집단의 40%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그 결과 일부 기업이 도산하거나 파산 위기에 몰려 있다.

기업의 내부도 문제가 심각하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리더십 위기에 봉착했다. 한국 대기업의 평균적인 역사가 이제 60년이 되면서 3세 경영의 시대가 왔으나, 기업들이 승계와 경영권 유지에 몰두하다 보니 사업 자체의 확장이나 경쟁력 확보에 소홀해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2, 3세들은 전략적 마인드보다는 재무적인 시각으로 사업에 접근한다. 성공적인 중소기업들도 후계자 문제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 있다. 창업자들이 은퇴 연령에 접어들었지만 후계자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능력 있는 자식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사업을 하겠다는 자식은 못 미더워서 은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고령의 기업가가 많다.

오너가 문제가 있으면 뒤로 물러나고 전문경영자가 나서면 될 텐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문경영자시대가 열리지 않고 있다. 회사에서 전문경영자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도 않고, 직원들도 전문경영자를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종합하면 한국 기업의 경영진이 늙어가고 관료화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과감하게 일으킬 기업가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기업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며 리스크를 회피하는 안정 경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입지매력도는 떨어지고 기업경영은 관료화하고 있으니 우리 경제의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욱 두려운 것은 욱일승천하는 중국 기업이다. 한국 기업은 지난 50년간 ‘빠른 모방자’ 전략으로 이만큼 성장했는데, 요즈음 한국 기업보다 더 빠르고 기동력이 있는 기업들이 중국의 민간기업이다. 알리바바나 레노버 같은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거대한 인구를 배경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인구의 정체 때문에 국내 경제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노동시장에 대한 왜곡을 시정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 수는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리드해온 대기업들이 먼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의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기업 밖에서도 창의적인 기업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원을 가용해야 한다. 사모펀드 같은 자본도 필요하고 외국의 경영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동력을 다시 찾게 해줄 비전 있는 기업가의 등장을 기대한다.

정구현 KAIST 초빙교수
#경제성장#인건비#관료화#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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