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서남수장관 유임이 더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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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의 역사관까지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이 있다. 한국에 유학 온 첫날 담당교수에게 인사하러 갔단다. 교수는 러시아에서 온 박사과정 학생을 반갑게 맞이하며 커피를 대접하려 했다. 그런데 마땅한 커피 잔이 없었다. 교수는 조교에게 건너오라고 전화를 했다. 교수 방으로 온 조교는 당연하다는 듯 설거지통에 잔뜩 쌓인 커피 잔들을 능숙하게 씻기 시작했다. 학생 박노자는 한국 대학을 관통하는 전근대적 사제 관계에 충격을 받았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게 제기되는 온갖 의혹에서 나는 대학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전근대성의 유령을 본다. 김 후보자는 제자들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며 자신을 제1저자로 했다. 표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무임승차인데 스승이란 지위를 이용한 강압이거나 좋게 봐줘도 공모다. 신문사로 말하면 후배가 발굴하고 써온 기사에 선배 기자가 자기 이름을 달아 게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단언컨대 언론계에 이런 관행은 없다.

김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의혹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다. 논문 가로채기, 연구비 부당 수령, 승진 심사 논문 표절에 이어 사교육업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지명 당일 모두 매각한 사실도 드러났다. 금액 자체는 얼마 안 된다고 하지만 그간 사교육을 비판하며 공교육 회복을 주장해온 교원대 명예교수이기에 배신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김 후보자가 지명되던 날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기명 칼럼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그때 들었던 인상은 ‘주관 없는 관변학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칼럼에서 사교육, 교원평가제, 대학수학능력시험, 학교폭력, 문-이과 통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과 관련한 주제를 다뤘는데 정부 정책과 배치되거나 비판하는 건 거의 없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이 정부 입맛에 맞게, 박근혜 정부 때는 박 정부 입맛에 맞게 글을 쓴 점이 신통하기까지 했다. 칼럼을 읽으며 그가 장관이 되더라도 일부에서 전망하듯 진보교육감과 충돌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진보교육감과 대립할 만한 소신도, 의지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야 ‘김명수 칼럼’에 대한 모든 의문이 해소됐다. 김 후보자에게 석사학위 논문 지도를 받은 현직 교사 이희진 씨가 그의 기명 칼럼을 대필(代筆)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교수님이 말씀해주는 방향과 논지로 글을 쓰면 교수님께서는 그 글을 확인하고 조금 수정해 넘겼다”면서 “지난 족적이 낱낱이 밝혀지는 지금, 그 상황을 아는 제자들을 기만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무릇 칼럼의 본령은 비판이고, 나아가 칼럼은 그 사람 자체다. 칼럼을 대필시키고 수업도 대신 들어가게 한 사람이라면 장관 이전에 교수로서의 자격도 없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제기된 모든 의혹을 깔아뭉개고 두루뭉수리 넘어가려는 태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휴대전화를 꺼놓고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퇴라는 대형 이벤트 뒤에 숨어 “어떻게 되겠지” 하며 넘어가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말이다.

사람들은 김 후보자에 대해 “마음씨 좋은 시골 할아버지 같다”고 한다. 품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낡아빠진 교육계 관행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밝혀진 의혹만으로도 그가 교육 개혁의 적임자가 못 된다는 점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카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길을 잃었을 땐 계속 나가기보다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길을 찾을 확률이 높다. 김 후보자 대신 서남수 장관을 유임시키는 게 백번 낫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김명수#논문 표절#주식#서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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