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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토요판 커버스토리/월드컵 특집]브라질은 어떻게 축구의 나라가 되었나

입력 2014-06-14 03:00업데이트 2018-08-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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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up Brasil 2014]
춤과 전통무예가 축구공을 만나 그라운드의 예술로
‘삼바축구’로 대변되는 축구 강국 브라질을 떠올리면 지구촌 축구 팬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특출한 개인기와 현란한 드리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골…. 축구 종주국은 영국이지만 팬들은 ‘축구’ 하면 브라질을 연상한다. 월드컵에서 역대 최다인 5회 우승을 해서만이 아니다. 그만큼 브라질 축구는 매력적이다. 삼바 리듬을 타듯 자연스럽고 멋있다. 스포츠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브라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삼바축구의 원동력을 찾아보면 슬픔과 한(恨)이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이국땅에서 백인들의 억압을 참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삼바(Samba)춤이 백인들이 흑인들을 멸시해 부를 때 사용하던 ‘삼보(Sambo)’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졌듯 삼바축구도 ‘흑백 갈등’의 슬픈 유물이다.

‘축구 전쟁의 역사(Football against the Enemy)’를 쓴 사이먼 쿠퍼는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74)를 ‘말란드루(Malandro)의 후예’로 명명하고 브라질 축구의 역사를 분석했다. 그는 삼바축구를 춤 같은 브라질의 전통 무예 ‘카포에이라(Capoeira)’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말란드루들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제6회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탄생한다. 1958년 6월 15일 열린 스웨덴 월드컵 브라질-소련의 4조 리그전 마지막 경기. 브라질의 페올라 감독은 오스트리아를 3-0으로 꺾었지만 잉글랜드전에서 0-0으로 비기며 득점력 부재를 보이는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18세의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란 무명 소년을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브라질의 선발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관중석엔 웅성거림이 일었다. 18세 청소년 선수에게 의존해야 할 만큼 브라질에 인재가 없느냐는 동정의 목소리였다. 브라질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대동한 주앙 카르발랴에스 심리학 교수도 “아직 어리고 책임감이 결여된 선수를 출전시키면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하다”라며 말렸다. 그러나 페올라 감독은 “당신이 심리학은 잘 알지 모르겠지만 축구는 나보다 모른다”라며 그 소년을 투입했다.

페올라 감독의 승부수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 소년은 비록 그 경기에선 득점을 올리지 못 했지만 가린샤, 디디, 바바 등 팀 선배들과 함께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 받고 있던 야신이 지키고 있는 소련의 문전을 유린해 2-0 완승을 이끌었다. 2년 전 멜버른 올림픽에서 우승한 강호 소련은 이 무명 소년의 발재간에 넋이 나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브라질 언론들은 이 무명 소년을 ‘축구의 진주(펠레)’라고 칭송했고 이 소년이 바로 ‘축구 황제’ 펠레였다.

브라질 국내에서 ‘어디서나 마술을 일궈내는 소년’으로 통했던 펠레. 이제 갓 우물에서 벗어나 망망대해로 나온 상태였지만 거칠 것이 없었다.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그리고 스웨덴과의 결승전(5-2 브라질 승)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브라질의 5골 중 2골을 뽑은 펠레.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불리는 골이 바로 이 경기에서 나왔다.

2-1로 앞서던 후반 10분. 날아오는 공을 가슴 트래핑으로 수비수 오른쪽으로 떨어뜨리며 따돌린 펠레는 공이 그라운드를 맞고 튀어 오르자 다시 오른발로 높이 띄워 달려드는 수비수를 따돌린 뒤 떨어지는 공을 발리슛하는 환상의 묘기를 연출했다. 이 공이 골문으로 보기 좋게 빨려 들자 ‘적군’ 스웨덴 관중들도 이 흑인 소년 펠레의 놀라운 개인기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독일축구의 ‘카이저(황제)’ 프란츠 베켄바워는 훗날 펠레를 두고 “누구와도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아직까지 감히 펠레에 근접할 선수는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 ‘축구황제’ 펠레는 화려한 개인기와 골 결정력으로 1958년 스웨덴(우승), 1962년 칠레(우승), 1966년 잉글랜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우승)까지 4회 연속 출전해 3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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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전설 ‘말란드루’ 축구선수의 전형으로 꼽히는 가린샤(왼쪽)가 1958년 스웨덴 월드컵 8강전에서 웨일스의 수비수 멜 홉킨스를 따돌리고 드리블하고 있다. 브라질의 1-0 승리. 가린샤는 이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첫 월드컵을 안긴 주역으로 활약했고 4년 뒤 칠레 월드컵에서도 브라질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GettyImages 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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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자이르지뉴(왼쪽)가 페루와의 1970년 멕시코 월드컵 8강에서 3-1이던 후반 25분 상대 골키퍼까지 제치고 쐐기골을 넣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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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가 보여준 역사상 최고의 골은 말란드루들이 했던 카포에이라의 산물이다. 말란드루는 브라질 민간에서 전승하는 전설의 인물이다. 노예였던 그는 완전한 자유를 결심하고 자유인으로 산다. 규율이 보통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만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기꾼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움직이며 어떤 규칙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며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중요한 사실은 브라질 사람들 모두가 스스로를 말란드루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말란드루가 브라질의 국민성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브라질이 경기하는 모습에 우리는 그들의 고유한 국민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브라질 사람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브라질 사람들은 언제나 말란드루 얘기를 꺼낸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사실상 두 개의 도시다. 하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같고 다른 하나는 소웨토와 비슷하다. 요하네스버그는 백인 지역, 소웨토는 흑인 거주 지역으로 남아공 ‘흑백 갈등’의 상징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부유한 백인들은 해안선을 따라 거주하고 있으며 가난한 유색인들은 산지의 파벨라스(Favelas)에 살고 있다. 이 파벨라스가 바로 브라질 축구의 메카다. 파벨라스는 말란드루의 산실인데 말란드루 정신이 브라질 축구의 자유로움을 이끌고 있다.

당시 파벨라스엔 여성 가장이 많았다. 돌봐야 할 아이가 대여섯 명씩이나 되는 가장들이다. 이 아이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가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됐다. 경찰로부터 잘 도망치고 싸움도 잘하는 아이다. 그들은 삶의 고통을 뒤로하고 공을 드리블했다. 축구장에서 수비수를 따돌리는 것과 실제 생활에서 영리한 소년이 되는 것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런 소년들이 현대적 의미의 말란드루였다.

고전에 등장하는 말란드루는 흑인이다. 브라질 흑인들의 전래 스포츠인 카포에이라에 뛰어나다. 카포에이라는 춤과 무예가 혼합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무예이지만 백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춤같이 추었다”고 분석한다. 댄서는 발뒤꿈치에 칼을 부착하고 상대와 춤을 추며 겨룬다. 그래서 브라질 축구를 이해하려면 카포에이라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카포에이라는 상대방을 속이는 방법이다. 강한 선수가 이기는 권투와는 다르다. 카포에이라는 몸의 철학이다. 카포에이라는 춤일 뿐만 아니라 스포츠다. 그리고 위대한 브라질 축구로 승화됐다.

19세기 말 영국과 네덜란드 선원들에 의해 전래된 축구는 브라질 사람들에겐 익숙한 놀이였다. 마치 태생적으로 축구를 알았다는 듯 공을 가지고 놀았다. 전국에 리그가 형성됐고 수많은 아이들이 공을 차며 미래를 꿈꿨다. 수많은 말란드루들이 카포에이라 대신 축구공을 차기 시작한 것이다.

브라질은 펠레와 디디, 가린샤, 자이르지뉴 등 흑인 선수들이 주축이 돼 월드컵을 세 차례(1958, 1962, 1970년)나 우승했다. 이들이 카포에이라 선수는 아니었지만 우아함과 묘기를 숭상하는 이런 무예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축구를 하는 말란드루였던 것이다. 브라질에서 위대한 축구 스타는 최고의 드리블러였다. 가린샤, 펠레와 같은 선수들은 드라이 리프(Dry Leaf·브라질 미드필더 디디가 고안한 유명한 장거리 슛. 마지막 순간에 급격히 가라앉아 이런 별명이 붙었다), 바이시클(Bicycle) 슛 등 새로운 동작을 창안했다. 최고의 카포에이라 무사들이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듯이 말이다.

전형적인 말란드루 축구 선수는 가린샤였다. 파벨라스 출신으로 왜소한 체구의 물라토(Mulatto·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그는 측면 공격수였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약간 짧고 몸도 가냘프기만 해 ‘작은 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부적인 재능과 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바람처럼 가볍게 상대 문전을 파고드는 그에게 상대 수비수들은 허망하게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라운드의 풍운아인 이 말란드루에게 전술이나 작전은 무의미했다. 닥치는 상황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말란드루 스타일이다. 브라질 대표로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두 번이나 우승컵을 조국에 바쳤다.

펠레는 가린샤를 잇는 말란드루였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구두닦이로 일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쿠퍼가 펠레를 말란드루의 후예로 대표 지칭한 것은 ‘황제’라는 칭호 때문이다. 스포츠 세계에서 ‘황제’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지 않는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불멸의 스타 중의 스타에게나 걸맞은 영광스러운 작위다. ‘신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태어났다’는 펠레에게 ‘축구 황제’라는 칭호조차 부족한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월드컵 4회 출전에 사상 첫 3회 우승, 프로 통산 1363경기에서 1281골, 해트트릭 92회, A매치 92차례 출전에 97골. ‘펠레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펠레는 자신이 남긴 갖가지 기록과 함께 영원히 추앙받을 것이다.

이런 자유롭고 화려한 브라질 축구가 1970년대 후반 변하기 시작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에 이어 3위에 머문 뒤 파워와 스피드를 가미한 유럽식 축구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결국 브라질은 세계 축구의 주류인 유럽 축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브라질 특유의 말란드루 스타일에서 조직과 체력을 앞세운 유럽 축구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중요한 고비에서 유럽의 강호들에 번번이 패하던 브라질은 유럽 스타일을 접목해 1994년 미국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패했다.

이렇게 말란드루도 변했다. 아직도 특유의 정신은 가지고 있지만 브라질 선수들은 시대의 조류를 따랐다. 말란드루는 이제 파벨라스를 떠나 유럽의 유명 클럽으로 갔다. 그리고 그 선수들은 아주 부유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흑인의 전유물이던 축구에서 백인들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80년대 스타인 지쿠, 팔카우, 소크라테스 등은 모두 백인 중간 계급이다. 이젠 카포에이라마저 백인의 스포츠로 바뀌고 있다. 유럽에서 뛰는 흑인과 백인 그리고 물라토가 즐비하다. ‘백인 말란드루’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하얀 펠레’ 카카(AC 밀란)다. 수많은 브라질 스타가 빈민가 출신인 데 비해 그는 중산층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 멤버로 활약하고 지금도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다.

한편 시대는 변했지만 펠레의 뒤를 잇는 말란드루는 계속 탄생하고 있다. ‘신 축구황제’로 불렸던 호나우두. 그도 리우데자네이루 북동부 벤투히베이루의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맨발로 시궁창에서 공을 차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최근엔 ‘신성’ 네이마르(바르셀로나)가 브라질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상파울루 모지다스크루지스에서 태어나 상비센치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보낸 네이마르도 길거리에서 아이들과 공을 차며 꿈을 키운 ‘말란드루’다.

브라질에는 20개 팀이 겨루는 프로축구 1부 리그부터 5부 리그까지 있고 사설 클럽팀을 포함해 전체 500여 개 클럽팀이 있다. 1부를 제외하면 시설 등이 열악하지만 월드스타를 꿈꾸는 말란드루는 넘쳐난다. 지금도 매년 1000∼1400여 명의 말란드루들이 브라질을 떠나고 400∼600여 명이 돌아온다. 현 시대의 말란드루들이 양대 축구대륙을 오가며 축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팬들이 종주국 영국보다 브라질을 ‘축구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이유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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