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1994년 영화 1편 받는 데 일주일, 2014년 유럽여행 남친과 카톡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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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상용화 20년]<상>모뎀에서 스마트폰까지

한국 인터넷 상용화 20년
‘세계 최대 정보통신망인 인터네트의 각종 고급정보를 안방과 사무실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인터네트(KORNET·코넷)가 20일부터 서울지역을 시작으로 상용 서비스에 들어갔다.’

1994년 6월 21일자 동아일보는 한국의 인터넷 상용화 시대 개막을 이렇게 보도했다. 불과 20년이 흐른 현재 인터넷은 한국인의 삶에서 없어선 안 되는 존재가 됐다. 눈부신 성장을 이룬 오늘을 맞기까지 한국 인터넷은 어떤 세월을 거쳤을까?

○ ‘온라인 세상’의 개척자들

코넷 초창기 개인 가입자의 월 이용요금은 4만 원. 인터넷의 최대 속도는 9.6kbps였다. 지금 6초면 내려받는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다고 가정하면 무려 7일 이상 걸리는 느림보 통신망이었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은 신세계였다.

1994년 코넷 운영요원이었던 황재천 KT 인터넷 마이스터는 “두 달 동안 매일 20통 넘게 전화를 걸어 인터넷 사용법을 묻는 고객이 있었는가 하면, 모뎀 전원을 안 켜놓고 ‘인터넷이 고장 났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 정보기술(IT) 분야에 몸담고 있던 대학생, 직장인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혹은 재미삼아 인터넷을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 충남대 석사과정 재학생이었던 김영렬 씨는 최초의 한글 검색엔진 ‘코시크(kor-seek.com)’를 개발해 한글 사용자들의 인터넷 탐색을 도왔다. 당시 IT 전공 석·박사 학생·연구원 또는 직장인이었던 이재웅, 권도균, 김정주, 나성균 씨 등은 각각 다음커뮤니케이션, 이니시스, 넥슨, 네오위즈 등을 창업하며 대중을 위한 게임, 포털, 전자결제 시장을 개척했다.

○ 벤처 꽃 활짝… 세계 최초 잇달아

이 젊은이들이 만든 서비스 중에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단 것이 여럿 있었다. 1996년 넥슨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와 이니시스의 전자 지불 시스템, 1999년 네오위즈의 인터넷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 새롬기술의 인터넷 전화 서비스 ‘다이얼 패드’ 등이 대표적이다.

1997년 나온 다음의 ‘한메일’ 서비스는 더욱 많은 일반인을 인터넷으로 불러들였다. 이어 1998년 네오위즈가 ‘원클릭’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인터넷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아이콘 한 번만 클릭하면 인터넷 창이 열리는 현재와 달리 당시엔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최대 10여 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원클릭은 말 그대로 클릭 한 번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혁신적 서비스였다.

○ 한국의 정(情) 문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언제 어디서나 연결이 가능한 인터넷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문화 속에 관계 지향적 인터넷 서비스들을 꽃피웠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현재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초기 모델을 한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99년 나온 대표적 서비스가 ‘아이러브스쿨’ ‘다음 카페’다. 이어 2000년엔 전국적 신드롬을 일으킨 ‘싸이월드’까지 등장하며 2001년 국내 인터넷 이용자는 단숨에 2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즈음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구축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로 올라섰다.

현재 오프라인을 넘보는 시장으로 성장한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도 인터넷 상용화를 더욱 촉진한 계기였다. 국내에서 최초로 현재와 같은 인터넷 주문 및 택배 배달 시스템을 선보인 업체는 1996년 인터파크였다. 초창기에는 온라인 결제에 대한 불안감 및 ‘그림만 보고 산’ 물건에 대한 불신 때문에 호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곧 롯데백화점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온라인 쇼핑 시장이 점점 커졌다.

온라인 거래의 편의성은 금융업계로 확산됐다. 1997년 온라인 증권 거래 시스템이 등장했고, 1999년엔 첫 인터넷뱅킹 서비스가 출현했다. 이후 공인인증서 도입(2000년), 모바일뱅킹 서비스 개시(2003년)가 이어지며 한국 금융거래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지게 됐다.

○ 모바일 시대 한국, “세계와 항해 중”


2000년대 들어 한국 인터넷의 화두는 ‘모바일’이었다. 2002년 KT가 내놓은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 ‘네스팟’을 계기로 인터넷의 무선 이용이 급속히 증가했다. 2009년에는 국내에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2010년에는 카카오톡이 등장해 모바일 메시징 시장을 개척했다.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한국은 명실상부하게 세계 인터넷 시장의 테스트 베드로 부상했다. 구글(2006년)과 유튜브(2008년) 페이스북(2010년)이 잇달아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현재 국내 인터넷 업계는 글로벌 기업의 각축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의 해외 서비스가 진출한 상태다. 빠른 기술 변화와 극한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는 사례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최근 네이버 라인의 전 세계 사용자는 4억 명을 돌파했다. 한국 인터넷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인터넷#모뎀#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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