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노환규와 안철수, 한국을 흔드는 두 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젊은 친위대 힘으로 정상 진입한 ‘의료계 안철수’ 의협회장
“원격의료 반대”는 파업명분일 뿐… 실제 원하는 건 돈과 진입규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내고 만다”
이익집단-수구좌파에 맞서는 결기… 어떤 장관이 보여줄 것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의사로 출발해 정보기술(IT) 기업을 이끌었다. 팬클럽 같은 친위대가 있어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어울리지 않게 ‘의료민영화와 원격진료 반대’를 주장한다.

안철수 의원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계의 안철수’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공통점이 적지 않다. 모든 투쟁의 선봉장인 박석운(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과도 연결돼 있다. 6·4지방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처음엔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돈키호테가 아니냐는 반응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대한의사협회(의협) 노환규 회장이다. 지난주 그가 원격진료 6개월 시범실시 후 법안 제출, 건강보험 수가 결정구조 조정 등 의정(醫政)협의안을 내놓지 못했다면 당장 오늘 2차 의료파업이 벌어질 뻔했다.

15년 전 건강정보 인터넷서비스 기업을 세운 노환규는 2009년 ‘나꼼수’같이 성적 농담과 욕설까지 즐기는 인터넷커뮤니티 닥플닷컴을 열었다. 의협이 교수 중심이어서 개원의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도 설립했다. 새 정치를 바라는 ‘안철수 현상’이 정치인 안철수를 만든 것처럼 ‘세대교체’를 원하는 젊은 의사들이 2012년 쿠데타 하듯 뽑은 회장이 노환규다.

지난 주말 송후빈 충남의사회장은 “노 회장 당선으로 의료계 혁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처럼 떠올랐던 당시, 16년의 수련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온 30대 의사들은 보험수가가 낮다며 부글대고 있었다. 노환규는 “전문의 연봉 9200만 원은 너무 적고 환자가 진료비를 적게 내면 의사를 저평가한다”며 분연히 나섰다. 전임 회장에게 ‘달걀과 멸치액젓 테러’를 가한 것처럼 ‘관치의료의 노예’ 의사들을 정부로부터 구하겠다는 전의총의 메시아였다.

그 전의총이 21일 “노환규를 회장에 당선시킨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반성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노환규의 의협이 ‘원격의료와 영리자회사 저지 등 회원 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는 투쟁 어젠다’를 내걸고 이해관계가 다른 ‘타 직역과 공조’하는 돈키호테 같은 일을 했다고 폭로한 거다. 전의총은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는 회장이 과연 의료계를 위하는 진정성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간파했음에도 투쟁 국면이라는 상황으로 적극 대처하지 못했음에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의사들이 진짜 원한 건 영리자회사 금지가 아니다. 수가 인상이고, 의대 정원 축소라는 진입규제 강화임을 노환규는 페이스북에 솔직히 드러냈다. 그들이 ‘의료악법’으로 지목한 것은 원격의료 같은 의료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아니었다. 리베이트를 주면 제약사뿐만 아니라 받은 의사도 처벌하는 ‘리베이트쌍벌죄’와 성범죄로 걸리면 10년 의사면허 정지를 받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사실까진 차라리 감췄으면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노환규는 원격진료 반대를 주장했고 보건의료노조 등 이른바 진보단체와 손잡았다. 국민건강의 명분을 앞세움으로써 ‘의사 이기주의’로 파업한다는 비난을 피한다는 정치적 계산이었을 거다.

의협 내부에서 회장의 독선을 지적해도 소용없었다. 철도민영화 반대 이후 투쟁 목표를 찾던 좌파 단체들이 ‘의료민영화 저지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라며 가세했다. 범국본 공동대표 박석운은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에서 안철수한테 대선후보 야권 단일화를 촉구했던 그 사람이다. 양대 노총까지 포함해 범국본은 벌써 6월 파업계획을 밝히는 등 6·4지방선거까지 투쟁을 이어갈 태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혁파가 일자리라며 관료마인드 개혁을 촉구했다. 턱도 없다. 원격진료와 영리자회사 허용은 작년 말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발표했지만 결국 기득권 이익집단에 밀린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규제개혁을 해낸다는 데 노환규처럼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결기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범국본처럼 반대만을 일삼는 수구 좌파 이데올로기는 규제개혁의 암 덩어리다. 그제 청계광장에 200여 명이 모인 ‘국민촛불대회’에서 박석운은 “원격진료란 삼성재벌과 국민건강을 엿 바꿔 먹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관료들에게 소외된 계층 지원, 법적 제도적 완비로 맞설 수 있는 실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지자들이 “잘못 뽑았다”고 가슴을 쳐도 어쨌든 노환규라는 리더가 있어 의협은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한국사회를 요동치게 하는 또 한 사람의 의사가 돈키호테는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