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관할업체서 축의금 받으면? 뇌물→관례→뇌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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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개인친분 없다면 수뢰로 봐야”… 일부 무죄 선고한 원심 파기 환송

공무원이 자녀 결혼식 때 특별한 친분은 없지만 업무상 관련 있는 업체 관계자들에게 청첩장을 보내 5만∼10만 원 정도의 축의금을 받으면 ‘뇌물 수수’에 해당할까.

김모 씨(57)는 2010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과장 시절 관할 사업장의 산업안전을 지도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씨는 딸 결혼식을 앞두고 지도 점검 대상 업체 관계자 45명에게 문자메시지와 청첩장을 보냈다. 대부분이 김 씨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고 업무상 알게 돼 명함을 교환한 사이였다. 김 씨에게서 청첩장을 받은 이들은 적게는 5만 원에서 최대 30만 원까지 약 530만 원을 축의금으로 냈다.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받은 축의금은 사교적 의례일 뿐 뇌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업체 관계자 중 일부는 검찰 조사에서 “명함 정도만 주고받은 사이였는데 청첩장이 와서 안 갈 수 없어 참석했다”면서 “회사를 감독하는 노동청 관계자에게서 그런 청첩장을 받고 안 가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5만∼10만 원의 축의금도 뇌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과태료 부과를 무마해 주겠다며 300만 원을 받고 골프 및 식사 접대를 수차례 받은 혐의(뇌물 수수 등)와 함께 축의금 부분도 유죄로 보고 김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500만 원과 추징금 1600여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개인적 친분 관계가 없고 업무상 알게 된 업체 관계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청첩장을 보냈다”면서 “김 씨는 이들의 경조사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업체 관계자들 역시 잘못 보일까 걱정하거나, 잘 보일까 기대하고 축의금을 낸 것으로 보여 뇌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0만∼30만 원 규모 축의금의 경우에는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5만∼10만 원인 경우에는 무죄로 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 원 및 추징금 1200여만 원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자녀가 결혼할 때 부모로서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직장 동료, 주요 거래처 등 업무상 접촉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청첩장을 보내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고 청첩장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축의금을 보내 결혼을 축하해 주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뇌물로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최종 결론은 유죄였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김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대법원은 “업체 관계자가 건넨 축의금이 개인적 친분 관계에 따라 필요한 것이라고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지를 심리·판단한 다음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교적 의례 형식을 빌렸다 해도 뇌물수수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무원이 직무상 관계는 있지만 친분이 없는 사람들에게 축의금을 받는다면 액수와 무관하게 뇌물수수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 판결로 공무원이 받는 축의금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공무원 축의금#뇌물 수수#축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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