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북한 이야기]‘혁명의 도시’에서 ‘욕망의 도시’로 변한 평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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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6월 방문자 5000만 명을 돌파한 동아닷컴의 파워 블로거 주성하 기자의 칼럼 ‘북한이야기’를 이번 주부터 격주 화요일 오피니언면에 연재합니다. 서울에서 평양은 불과 200km, 차로 3시간 거리이지만 주 기자가 평양에서 서울까지 오는 데에는 무려 8년이 걸렸습니다. 주 기자는 아직도 “마음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람 세찬 서울과 안개 자욱한 평양 사이를 넘나든다”고 합니다. 그가 쓰는 ‘북한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길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
        

최근의 평양시 전경. 동아일보DB
최근의 평양시 전경. 동아일보DB
‘혁명의 수도 평양.’

평양역 앞 아파트 옥상에 크게 붙어있는 구호이다. 기차를 타고 평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맨 먼저 이 구호부터 보게 된다.

‘혁명의 수도’는 세뇌의 키워드다. 북한 사람 누구에게나 “평양은?” 하고 물어본다면 수십 년 익숙하게 된 접선암호 맞히듯이 “혁명의 수도”라는 대답이 즉시 돌아올 것이다. 심지어 잠꼬대 속에서라도.

평양아파트 가격 최고 16만달러

하지만 반세기 전쯤 평양에서 끓었던 사회주의 혁명의 열망은 세습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개인의 욕망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평양은 더는 혁명의 수도가 아니다. 부자가 되려는 꿈이 지배하는 ‘욕망의 수도’일 뿐이다.

이제 그곳에선 혁명도, 통제도, 순응도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평양의 욕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아파트다. 내 집 마련에 대한 한민족의 집착, 집을 통한 부의 과시욕은 평양이나 서울이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평양의 집값은 아직 꺾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집값 그래프는 계단식으로 상승해왔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굶주린 사람들은 국가에서 배정받았던 아파트를 달러와 바꾸기 시작했다. 평양 모란봉구역 북새거리의 30평형대 아파트가 5000달러에 팔렸다. 그렇게 평양의 부동산 거래는 본격화됐다. 혁명의 수도에서 아파트 가격은 항상 그들이 증오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달러로 거래된다.

10여 년 전 최고가 5000달러에서 시작된 평양의 아파트 가격은 2013년 16만 달러를 넘어섰다.

올 4월 보통강구역 유경동에 완공된 30층짜리 아파트는 8만 달러 언저리에서 맴돌던 아파트 최고가를 단숨에 두 배나 올렸다. 평양 아파트 최초로 180m²(약 54.5평) 이상의 크기에 수입산 대리석과 같은 최고급 자재를 썼다. 중국 아파트의 설계를 그대로 가져다 지었고, 지하철 황금벌역까지 100m 정도 떨어져 교통 입지도 매우 좋다. 다만 주변 아파트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정전과 단수는 피해가지 못했다.

권력기관들 절반 챙기고 절반 팔고

이 아파트는 국가가 지은 것이 아니다. 달러를 주무르는 대외경제총국(일명 99호총국)이 자체 부동산 개발로 지은 것이다. 아파트의 절반은 99호총국 간부들의 몫이고, 나머지는 공사비를 뽑기 위해 팔고 있다. 하지만 99호총국 간부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내전이 벌어져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6개월째 배정이 끝나지 않았다.

평양의 고급 아파트들은 이런 식으로 힘 있는 기관이 건설한 것이다. 국방위원회가 대동강구역 동안동에 최근 신축한 160m²짜리 아파트는 7만∼8만 달러에 거래된다. 중구역 평양의학대 앞에 신축돼 완공을 앞둔 160m²짜리 아파트 역시 연말부터 7만∼8만 달러에 거래될 예정이다. 시내 중심 중구역은 100m² 정도의 낡은 아파트도 3만∼4만 달러에 팔린다.

중구 보통강 모란봉 대성구역과 같은 평양 중심구역에는 지금 새 아파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라가고 있다. 억눌렸던 욕망이 분출되듯이. 특히 각 기관들은 아파트를 지어 절반은 자기들이 갖고 나머지는 공사비를 뽑기 위해 팔며 권력을 남용한다.

시내 중심에 건설되는 아파트는 예외 없이 북한 관련법을 위반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합법적으로 건설허가를 내주는 지역은 통일거리 등 평양시 외곽뿐이다. 하지만 중앙 기관들은 권세로 내리눌러 건설허가를 따낸다. 평양시 인민위원회는 권세에 눌린 척 도장을 눌러주면서도 아파트 몇 채는 받아 챙긴다.

평양의 건설부문 간부에 따르면 평양에 각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지은 아파트는 최근 10년 사이 7만∼8만 채나 된다고 한다. 반면 북한이 국가적으로 건설한 집은 1995년 이후 2만 채가 채 되지 않는다. 북한은 2008년 평양시 10만 채 건설을 발기하고 강성대국의 원년인 2012년까지 완공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현실은 만수대거리와 창전거리, 시내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통틀어 2만 채도 채 완공하지 못했다. 그것도 아파트 동별로 외무성, 인민무력부 등 각 기관에 할당해주고 자체 완공하라고 강압적으로 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총력을 쏟아 부어 5년 동안 아파트 2만 채도 완공하지 못한 북한은 한국의 중견 건설사보다 못한 국력을 입증하고 말았다.

선분양-후분양 한국 개발방식 모방

하지만 점점 놀라울 정도로 한국의 개발방식을 닮아가고 있는 욕망의 사적 부동산 시장은 외부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선분양가와 후분양가까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잔재인 국가 배정 시스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북한 은하수악단이나 공훈합창단, 국립교향악단 성원들은 몇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선물로 받았다.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난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의 혼재, 시장화의 급속한 확산, 이것이 북한 전체를 아우르는 오늘날의 실상이다.

북한 이야기는 늘 궁금증이 남는다. 부동산만 해도 주택 매매가 어떻게 가능한지, 구매자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런 궁금증을 글 하나에 다 담을 순 없다. 주성하의 북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평양#부동산#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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