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먹통내비' 이유가…직원들 로비 탓?

  • 동아경제
  • 입력 2013년 10월 11일 1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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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 관련없음.
▲위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 관련없음.
서울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김정민 씨(36·가명)는 이달 초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자신의 수입차를 운전하고 강원도 영월로 가던 중 내비게이션이 엉뚱하게도 막다른 벼랑길로 안내한 것. 김 씨는 차를 돌려 나오면서 목적지를 다시 설정했지만, 내비게이션은 그대로 먹통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예식장에 도착했지만, 결혼식은 이미 끝난 뒤였다.

회사원 박지은 씨(31·가명)도 지난해 일본제 수입차를 구입했지만 출고 당시 장착돼 있던 내비게이션 때문에 불만이 쌓였다. 목적지를 입력해도 엉뚱한 길로 안내를 하는가 하면, 수시로 화면이 터치되지 않아 사용에 애를 먹었다. 박 씨는 “수입차 업체에 애프터서비스를 요청하면 내비게이션 납품업체로 연결해준다”면서 “하지만 납품업체에서는 SD카드를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하라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박 씨는 전혀 다른 내비게이션 전문 업체를 찾아가 자신의 돈을 들여 내비게이션을 통째로 바꿨다.

위의 두 운전자와 비슷한 네비게이션 불만 사례는 수입차 인터넷 동호회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운전자들은 출고 당시 장착돼 있던 내비게이션을 떼어내고 자신의 돈을 들여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부착하거나, 아예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끼리 모여 내비게이션을 공동구매해 부착하는 것도 동호회의 일상화된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내비게이션에 대해 불만이 많은데도, 수입차 업체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한 일본 수입차 회사에서 이 같은 이유에 단초가 될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내부 제보자에 따르면 이 회사가 차를 수입한 뒤 국내에서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는 과정에서 납품 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향응을 받았다는 것.

회사 측은 몇 년간 얼마나 금품을 수수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부감사 결과 내비게이션 업체는 제품을 납품하면서 1대당 약 10만 원씩을 직원들에게 상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차량 1000대에 1억 원이라는 큰 돈이 오고간 셈이다.

사건은 이 수입차 회사에 내비게이션을 납품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던 타 업체가 “뇌물이나 향응을 받지 말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회사의 최고위층에 투서하면서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수입차 회사는 자체 조사를 벌여 사실을 확인했지만, 연루된 직원이 많고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본사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내부적으로 사건을 덮은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고위층까지 향응 접대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가격에 비해 사용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신차에 내비게이션 가격이 포함됐지만, 출고한 뒤에는 비용을 따로 써서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장착해야하기 때문이다. 외부 업체에서 장착하는 수입차의 매립형 내비게이션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보자는 “지난 2011년에도 글로벌 인기 차종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말도 안 되게 상품성이 떨어지는 내비게이션을 장착해 내부 직원들조차도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면서 “결국 나중에 납품업체와 직원들 사이에 금품 및 향응이 오갔다는 말을 듣고 그런 제품을 납품 받은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사건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에 동아닷컴 취재진은 해당 회사 해외 본사의 책임 있는 담당자에 이번 사건에 관한 회사의 공식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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