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자유무역구 출범… 中, 제2의 개혁개방 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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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메카서 ‘국제 금융허브’ 도약 첫 걸음

리커창 총리
리커창 총리
중국이 제2의 개혁·개방에 나섰다.

국무원과 상하이(上海) 시는 29일 상하이의 수출입 관문인 와이가오차오(外高橋) 보세구에서 ‘중국(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현판식을 열고 중국 최초의 자유무역구 설립을 공식 선언했다. 1978년 1차 개혁·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이 제조업을 넘어 ‘첨단 금융·물류 중심지’로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신(新)개혁·개방에 나선 것이다. 이곳에서는 은행 간 금리가 자유화되고 위안화를 외국 통화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며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은행을 설립할 수 있다. 또 홍콩처럼 금융 거래에 조세나 외환상의 특혜를 주는 오프쇼어(off-shore) 업무도 허용된다.

중국이 자본자유화를 필두로 한 금융개혁과 물류 선진화에 성공하면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은 물론이고 한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역외금융센터 육성 등 금융 부문에 방점


‘상하이 자유무역구’는 와이가오차오 보세구와 와이가오차오 보세물류원구, 양산(洋山) 보세항구, 푸둥(浦東) 공항 종합보세구로 구성된다. 총면적은 28.78km²로 서울 종로구(23.91km²)보다 조금 더 넓다.

외국의 자유무역지대는 외국인 투자 유치나 가공무역을 위한 우대 조치가 중심이다. 하지만 상하이는 자본자유화와 역외금융센터 육성 등 금융 부문에 방점을 두고 있다. 국무원이 27일 발표한 18개 항의 ‘운영 총체 방안(로드맵)’에 따르면 자유무역구 안에서는 위안화 자유 교환 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현재 다른 지역은 개인은 연간 5만 달러(약 5375만 원)까지만 위안화로 바꿀 수 있다.

또 단계적으로 금리 결정을 시장에 맡기며 특히 자유무역구 안에 중국 민간 자본과 외국계 금융회사가 함께 합자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했다. 사실상 민간 은행을 허용한 것으로 국유은행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피터 웡 HSBC 아시아태평양 최고경영자(CEO)는 “상하이 자유무역구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중국 경제에 더 큰 유연성과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금융 개혁의 새 장을 열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중국계 은행이 홍콩이나 런던처럼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받으며 통화 등 금융거래를 하는 오프쇼어 마켓 업무를 할 수 있게 하고 외국계 의료보험기관 설립, 외국계 신용조사기업 설립도 허용키로 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선전(深(수,천)) 등 4개 도시를 ‘경제 특구’로 지정해 제조업 기반의 경제성장의 기초를 만들었다면 자유무역구는 그에 필적하는 새로운 경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상하이가 초기에는 ‘미니 홍콩’으로 보일 테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콩이 ‘미니 상하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홍콩을 통한 우회 수출과 간접 수출 방식으로 중국에 들어갔던 외자가 상하이를 통해 직접 주입될 수 있어서다. 량전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상하이 자유무역구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라면서도 “하지만 홍콩의 국제 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위협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신원왕(新聞網)은 이미 공상은행 건설은행 등 7개 대형 은행이 자유무역구 내 분행 설립 허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 기득권 반발, 금융시장 안전 확보가 관건

상하이 경제무역구는 시진핑(習近平) 정부에서 경제 분야를 맡고 있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첫 작품이다. 리커노믹스(리커창 이코노믹스) 제1호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유무역구 도입은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에 선진 금융의 날개를 달아 주기 위한 조치다. 이는 경제 전반의 개혁과도 맞물려 있다. 금융 부문이 시장 원리에 따라 제조업 구조조정을 견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구의 정식 명칭이 ‘중국(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라고 붙은 이유도 운용 성과에 따라 중국 전체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톈진(天津) 등 7개 도시가 두 번째 자유무역구 유치를 추진 중이다. 자유무역구에서 만난 상하이 시 정부의 판닝(潘凝) 씨는 “조만간 자유무역구가 푸둥 신구 전체(1210km²)로 확산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등 새로운 무역 질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중국은 이를 수용할 만한 전략 거점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또 위안화 국제화와 국유기업 개혁이라는 승부수도 담고 있다. 1석 4조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출범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리 총리가 7월 국무원 회의에서 자유무역구 설립을 놓고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를 표시했다고 한다. 국유은행 독점 구조를 깨겠다는 리 총리에게 은행 측과 금융감독기구가 대놓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는 “로드맵 발표 전 관련 내용이 언론에 유출되고, 상하이에서 외국 인터넷 접속 제한도 해제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런민(人民)일보가 이를 부인하는 등 반대 세력의 저항도 여전하다”고 전했다. 29일 현판식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던 리 총리가 불참하고 한정(韓正) 상하이 시 서기와 가오후청(高虎城) 상무부장 등이 행사를 주재한 것도 이런 기류와 연관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자본자유화 조치가 상하이를 넘어서 다른 지역으로 파급돼 통제가 어려워질 경우 시진핑 체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외경제무역대학 딩즈제(丁志杰) 금융학원장은 “자유무역구 내의 자금이 해당 구역 내에서만 흐르고 다른 도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차단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하이=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상하이 자유무역구#중국#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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