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호]불량 맛가루, 완제품은 먹어도 된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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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불량 맛가루(일명 후리가케)가 해롭지 않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15일 발표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달 초 경찰은 문제의 맛가루를 식재료 폐기물로 만들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한쪽은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먹지 못할 음식이라는 식이다. 같은 정부기관의 판단이 이렇게 다르다.

식약처는 이번 발표를 위해 직원 290명을 동원해서 맛가루 제조업체 I사를 비롯한 전국 263개 업체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저질 분말을 0.06%만 사용한 업체까지 남김없이 집중 조사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동물사료로 쓰기도 민망하다는 저질 맛가루를 두고 식약처는 어떻게 무해한 식품이라고 결론 냈을까. 식약처는 이렇게 설명한다. “I사가 다시마, 채소분말을 남은 자투리, 배추 겉잎 같은 저질 원료로 만든 건 맞다. 하지만 선별, 세척, 건조 등 가공 과정을 거쳐서 인체 유해성은 없다. 또 해당 원료로 만든 제품을 수거해 살펴보니 이물질, 식중독균, 대장균 기준이 모두 식품에 적합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서는 문제의 맛가루 제품에 저질 식재료뿐만 아니라 담배꽁초, 도로 포장용 아스팔트까지 들어간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런 판에 어느 누가 “문제없다”는 식약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식약처는 경찰 수사와 조사 결과가 다른 이유에 대해 “경찰은 원료 자체의 건전성을, 식약처는 완제품의 유해성을 조사했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아무리 엄격한 가공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폐기물로 만든 맛가루에 대해 안전하다는 식의 보건당국 발표를 쉽게 신뢰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곧바로 “(이번 발표가) 경찰의 발표 내용과 차이가 있어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날 식약처 발표는 불량식품 근절에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식약처와 경찰이 서로 손발이 안 맞는다는 사실만 여실히 드러냈을 뿐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5월에 경찰과 업무협약을 맺은 만큼 불량식품 단속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상반된 발표가 나오는 것이 공조 강화의 결과라고 이해하라는 얘기일까.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가 이미 불량 맛가루를 밥에 비벼 먹었다. 엄마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식약처가 이들의 분노와 혼란을 진심으로 걱정했다면 안전하다는 식의 표현을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철호 교육복지부 기자 irontiger@donga.com
#맛가루#완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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