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비 건립, 주민들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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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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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지’ 광주 운암2동 자치위 제안

“황석영 씨 옛 집터에 세웠으면” 2일 김남중 광주 북구 운암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광주 북구에 제안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비 건립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운암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탄생지인 소설가 황석영 
씨의 집터를 확인하고 노래비 건립을 제안해 각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황석영 씨 옛 집터에 세웠으면” 2일 김남중 광주 북구 운암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광주 북구에 제안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비 건립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운암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탄생지인 소설가 황석영 씨의 집터를 확인하고 노래비 건립을 제안해 각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1년 광주 북구 운암2동 소설가 황석영 씨 집에 예술가들이 은밀히 모여들었다. 당시는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이 생생히 남아있었고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때였다. 황 씨의 집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다. 이들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인 노래극 ‘넋풀이’를 몰래 준비했다.

노래극 마지막 부분에 들어갈 부활의 노래는 황 씨가 백기완의 시 ‘묏 비나리’에서 일부를 따와 ‘사랑도 명예도…’라는 노랫말을 지었다. 1979년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입상했던 전남대생 김종률 씨가 곡을 붙였다.

이들은 창문을 두꺼운 군용담요로 가리고 카세트테이프로 곡을 녹음했다. 5·18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1982년 2월 20일 광주 북구 망월동 시립묘지에서 열린 영혼결혼식에서 노래가 처음 불려졌다. 황 씨의 집은 1986년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건립지로 편입되면서 허물어졌다.

시간이 한참 흐른 2011년 김남중 운암2동 주민자치위원장(52)은 김영헌 북구 문화진흥과장(52)이 쓴 향토 사료책자 ‘광주 운암’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탄생지가 운암2동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이후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5·18 관련 서적,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노래의 탄생에 얽힌 뒷얘기를 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3월 14일 주민자치위 회의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광주문화예술회관 후문에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비를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위원들도 노래비에 건립에 그동안 모은 회비를 일부 보태기로 동의했다.

운암2동 주민자치위는 지난달 북구에 노래비 건립을 제안했다. 북구 마을만들기 사업 추진위는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광주시나 5·18 단체,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거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곡이 갖는 의미를 감안해 공론화와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 것이다. 그 대신 광주문화예술회관 후문에 쉼터를 조성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공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를 하도록 예산 1800만 원을 지원키로 했다.

김 위원장은 “광주가 인권도시인 데다 운암2동은 문화예술회관 등 문화예술 인프라가 많다”며 “노래비를 꼭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시도 노래비 건립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주민들의 노래비 건립 제안이 접수되면 황석영 김종률 씨의 의견을 듣고 5월 단체,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폭 넓게 확인해 공론화할 방침이다. 이경률 광주시 인권담당관은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운암2동 주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비’라는 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찾아냈다”며 “노래비 건립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해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3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가 본행사가 아닌 식전행사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5월 단체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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