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조벡의 할리우드 in the AD>오스카 드레스의 여왕, 케이트 블란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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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4일 10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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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의 SK-II의 모델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케이트 블란쳇.
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의 SK-II의 모델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케이트 블란쳇.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대에 들어선 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자들에게는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들이 그야말로 물밀 듯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일주일 동안은 비벌리 힐즈에 위치한 초특급 5성 호텔의 복도는 향수 냄새가 가득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고급 쥬얼리 브랜드, 그리고 최상의 액세서리 브랜드의 담당자로 만실(滿室) 상태가 된다. 그 이유는 마치 마피아가 배심원의 마음을 뇌물로 돌려 보려는 작전처럼 브랜드 담당자들이 후보자와 시상자들에게 고급 의상과 각종 주얼리 세트를 증정하면서 최후까지 자신의 브랜드 아이템을 후보자가 선택하게 하기 위한 섭외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미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은 소비자의 구매욕을 좌지우지 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기에, 패션 관련 브랜드들은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의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배우는 마지막 순간에 단 하나의 드레스를 선택하게 되지만, 그 드레스를 결정하는 동안 다수의 디자이너 브랜드의 드레스들이 그들 앞에 선보여지게 된다. 가령 여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같은 경우는, 그녀가 본 100여벌의 드레스 중에 하나를 자신의 오스카 드레스로 골라야 했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쉐카 카푸르’ 감독의 대영 제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기의 일대기를 다룬 대작 영화 ‘엘리자베스’에서 자신감 넘치는 열연이 돋보인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은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수상이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였다.

호주 멜버른 출신으로 1992년 시드니에 위치한 호주 국립 연기학교를 졸업하고 극작가 ‘데이비드 마멧’ 무대극 ‘올리나’와 세익스피어의 ‘햄릿’등으로 호주 국내 연기상을 2차례나 수상했던 실력파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에게 있어서 영화 ‘엘리자베스’는 배우 경력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었다.
케이트 블란쳇의 SK-II의 TV광고 촬영현장 모습.
케이트 블란쳇의 SK-II의 TV광고 촬영현장 모습.

아카데미 시상식 한달 전, 케이트 블란쳇은 런던에서 곧 시작하게 될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시간을 내어 스타일리스트 제시카 패스터(Jessica Paster)를 만나, 자신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드레스의 선택을 의뢰했다.

제시카 패스터는 바로 전회인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건의 스타일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 중 하나는 영화 ‘L.A.컨피덴셜’로 오랜 슬럼프 끝에 재기해서 당당히 여우조연상까지 수상한 ‘킴 베신저(Kim Basinger)’의 피스타치오 컬러의 ‘에스카다(Escada)’ 드레스였고, 다른 하나는 ‘미니 드라이버(Minnie Driver)’가 입은 체리 컬러의 ‘할스톤(Halston)’ 저지 슬립이었다. 특히 미니 드라이버의 드레스와 그에 맞춘 스타일링은 패션 전문가들로부터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고 드레스로 명명되었을 정도로 인상 깊은 스타일이었다.

LA의 멜로즈 애비뉴(Melrose Avenue)에서 부티크를 경영하고 있었던 제시카 패스터는 오스카의 레드카펫 의상이나 25만달러 상당의 오뜨 쿠뛰르 의상을 흔히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비닐봉지에 담아 주는 것으로 나름 악명이 높았으나, 할리우드 스타 고객들에게는 전심전력을 다하는 편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3달 전, 제시카 패스터는 이미 케이트 블란쳇을 위해 시간당 600달러의 초일류 헤어스타일리스트 ‘샐리 허쉬버거’와 인기 절정의 아방가르드 메이크업 브랜드 ‘스틸라(Stila)’의 창시자인 메이크업 아티스트계의 거물 ‘지니 로벨’로 구성된 감각으로 무장된 아카데미 레드카펫 전담팀을 준비시켜 두었다. 반면, 케이트 블란쳇의 오스카 드레스는 유럽의 거물 디자이너 두 명이 경쟁하고 있었는데, 그 두 명은 바로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가 이끄는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과 영국 출신의 젊은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었다.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와 파리에 위치한 ‘지방시(Givenchy)’의 아뜰리에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었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1997년 호주 출신 영화 편집자 및 각본가 였던 ‘앤드류 업튼’과 결혼한 케이트 블란쳇의 웨딩 드레스를 디자인 한 적이 있었다. 케이트 블란쳇과 제시카 패스터는 런던 패션위크의 ‘알렉산더 맥퀸’의 컬렉션을 관람한 후, 그와 따로 만남을 가졌다.

“그는 바로 우리들 눈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스케치를 했어요. 그 드레스는 끈이 없고 라이트 블루에 몸에 핏되고 하단에 아시아풍의 모티브가 있는 아름다운 드레스였어요”라고 제시카 패스터는 그때를 기억했다. 그러나 그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는 아쉽게도 종이 위에만 남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 한 디올의 드레스가 케이트 블란쳇의 오스카 드레스러 최종 선택되었기 때문이었다.

1999년 3월의 어느 날, 존 갈리아노의 친구이자 영화의 미술감독인 ‘마이클 하우웰’은 런던의 노팅힐에 자리한 자신의 집으로 케이트 블란쳇 부부를 포함한 가까운 지인 몇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게 되었는데, 물론 그 자리는 존 갈리아노가 따로 준비한 자리였다. 식사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는 동안 마이클 하우웰은 1997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니콜 키드만’의 디올 드레스가 얼마나 창의적이었는지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존 갈리아노는 케이트 블란쳇에게 자신이 그녀를 위한 드레스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뜻을 전했다.

마이클 하우웰은 파리에서 열린 ‘디올’ 쇼의 화려한 런웨이 무대를 디자인을 하기도 했고, 또한 처음 그가 케이트 블란쳇을 만나게 된 영화인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인 ‘이상적 남편(An Ideal Husband)’을 포함한 여러 영화의 미술감독을 역임한 재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친분관계로 마이클 하우웰은 케이트 블란쳇 부부를 자연스레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조금 고전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정식으로 PR을 통해서 진행하는 것 보다는 함께 식사라도 하면서 얘기를 나눠 보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클 지도 모른다고 존 갈리아노에게 귀띔했었다.

표면상으로 그 파티는 정말로 격식이 없는 저녁 식사였고 대화도 아카데미 시상식 드레스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의상 제작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존 갈리아노와 케이트 블란쳇 사이에는 벌써 불꽃이 일고 있었다. 결국 마이클 하우웰의 충고는 적절했고 그 저녁 식사가 끝날 때 쯤 케이트 블란쳇은 자신의 오스카 드레스로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가 아닌 존 갈리아노의 디올 드레스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제시카 패스터는 아카데미 시상식 몇 주전에 존 갈리아노의 화려함과 럭셔리의 절정을 보여주는 케이트 블란쳇을 위한 오스카 드레스의 첫 번째 샘플을 받았다. 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은 샘플의 색상을 그리 탐탁치 않아했고, 좀 더 밝은 톤의 드레스를 원했었다. 그러나 시상식의 날짜는 코앞에 다가왔고, 더 이상의 의상이 파리로부터 L.A.까지 공수될 시간이 충분치 않았었기에, 제시카 패스터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의 밝은 톤의 빈티지 가운을 대안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실은 거의 모든 패션 하우스들이 케이트 블란쳇에게 오스카 드레스의 제작을 제안 해 왔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드레스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기에 만일의 경우에도 큰 걱정이 없긴 했다.
레드카펫 위에서 드레스를 피로하고 있는 케이트 블란쳇.
레드카펫 위에서 드레스를 피로하고 있는 케이트 블란쳇.

드레스 뿐 만이 아니라 고급 슈즈 브랜드 ‘지미 추(Jimmy Choo)’가 케이트 블란쳇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3켤레의 이브닝 슈즈의 피팅도 기다리고 있었다. 지미 추는 할리우드 셀레브리티들이 시상식이나 파티에 참석할 때를 위해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새틴 소재의 구두를 드레스와 매치 될 수 있게 하얗게 염색을 해서 준비해 주는 서비스였다. 지미 추 측은 케이트 블란쳇을 위해서 좀 더 특별한 서비스도 제공했는데, 브랜드의 디렉터인 ‘타메라 멜런’은 케이트 블란쳇 부부가 약혼반지를 제작했던 필라델피아 소재의 보석상, ‘크레이그 드레이크’에게 커미션을 주고 그녀의 새틴 지미 추 슈즈와 어울릴 수 있도록10만 달러 상당의 총 45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앵클 스트랩을 주문했다. 보통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협찬된 슈즈는 똑같이 제작되어 자선 경매에 부쳐지거나, 매장으로 옮겨져 홍보로 이어지는 관례를 가지기 때문에, ‘한명의 여배우에의 협찬이 10개의 광고 캠페인의 가치를 가진다’라는 소신을 가진 타메라 멜런 이었지만 이 케이트 블란쳇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슈즈의 경우는 그 카피본은 물론 비슷한 제품도 제작을 허가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녀에게 심혈을 기울였다.

시상식 당일 오전, 레드카펫 위로 오르기 위해 케이트 블란쳇과 스타일리스트 제시카 패스터는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영국의 유서깊은 주얼리 브랜드 ‘애스프리(Asprey)’의 자수정 헤어핀으로 머리를 고정시켰고, 45캐럿 상당의 다이아몬드 스트랩이 달린 지미 추의 슬링 백 슈즈에, 시상식 하루 전에 겨우 도착하게 된 디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제시카 패스터3만5천불을 호가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빈티지 핸드백을 매치시키면서 룩을 완성했다.

1999년 3월 21일, 제 71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 위에서 피로한 케이트 블란쳇의 탐스러운 스카이 퍼플 컬러의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디올 드레스는 ‘역대 최고로 환상적인 오스카 드레스’라고 패션 일간지 WWD에 의해 칭송 되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진정 디올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할 만큼 멋진 존재였지만, 2000명이 넘는 연단의 관객과 400여명의 포토그래퍼들 앞에서는 몹시 신경이 예민해 지기도 했었다. 결국 케이트 블란쳇은 그날 밤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지만, 그녀의 드레스와 그 멋진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케이트 블란쳇은 아카데미의 레드카펫의 열기를 달구는 정예멤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듬해부터 자주 자신이 후보자로 오르기도 하면서 혹은 시상자로 선정되어 아카데미 시상식을 찾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멋진 드레스와 함께 자신의 궁극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레드카펫 위에서 피로할 기회가 있었고, 대중들은 그녀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감각에 찬사를 보냈다.

사실 그녀에게 쏟아진 그 찬사 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하우스들의 노고가 크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매 해 케이트 블란쳇에게 쏟아지는 패션 하우스들로부터의 수많은 러브콜 중에서 자신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하나의 아웃핏을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그 남다른 감각이 그녀를 레드카펫위의 스타일퀸으로 등극 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진 제공ㅣ조엘 킴벡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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