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조벡의 HOLLYWOOD in the AD>레드카펫에서 진가를 발하는 ‘빨강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3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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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패션쇼의 프론트로(패션쇼의 맨 앞줄)에 앉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패션계에서 파워가 대단한 패션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는 하루 일하는 데 1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특 A급의 모델 군단인 '슈퍼모델'들을 뉴욕 패션 위크로 불러들였다.

그는 당시 신문의 1면에 기사를 가장 많이 만들어 내던 5명의 초특급 런웨이 모델들을 선정해 그녀들의 이름을 따서 '케이트, 나오미, 클라우디아, 린다 그리고 나디아(Kate, Naomi, Claudia, Linda and Nadja)'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 세계 패션 계 인사들에게 이 이름들은 익숙해져가며 바야흐로 슈퍼모델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이들은 슈퍼모델이라 불리며 가늠할 수 없는 인기를 누렸지만 뉴욕이나 파리 혹은 밀라노의 런웨이에서 받게 되는 개런티는 할리우드 톱 클래스 배우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이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가 디자이너를 역임하고 있었던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드레스를 제69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일급 이벤트에 독점적으로 착용하는 조건으로 받게 된 200만 달러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유명 패션지의 에디터들도 슈퍼모델의 이야기보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올 드레스를 입은 니콜 키드만의 스토리를 비롯해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전해오는 패션 뉴스를 더 선호했다.

▶남편 톰 크루즈 게이설에 상처받은 키드먼은…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발렌시아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니콜 키드먼.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발렌시아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니콜 키드먼.

1998년, 유럽의 최고급 패션 브랜드들과 미국의 거대 화장품 회사들은 슈퍼모델들과 작별을 고하고 아카데미 레드카펫의 뮤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들 역시, 아카데미 레드카펫 위에서의 승리를 위해, 시상식이 열리기 전 거의 1년 전부를 투자해 배우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수상 가능성이 예상되는 배우들과 독점계약을 맺기 위해 혈안이 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니콜 키드먼이 아카데미에서 보여준 디올 드레스와 같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드레스 한 벌은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무한 반복 재생되어 이미지가 재생산 될 뿐만 아니라, TV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5000만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게 브랜드를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아카데미의 레드카펫은 패션 브랜드에게 있어 최고로 영향력 있는 광고 캠페인의 장이 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니콜 키드먼은 패션 브랜드에서 가장 탐낼 만한 최상의 조건을 가진 여배우였다.

그녀가 제 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 부문의 시상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유럽과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일제히 그녀에게 자신의 브랜드의 드레스를 입히기 위해 난리였다.

당시 니콜 키드먼은 1996년에 발간된 '헨리 제임스'의 소설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에서 상처받은 여자주인공 이자벨 아처를 맡아 촬영이 한창일 때였다.

일명 '톰 크루즈 부인'으로 불리기도 하던 서른살의 키드먼은, 그녀의 남편인 톰 크루즈가 영화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에서 맡은 스포츠 에이전트 역으로 그 해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있었기에, 딱히 시상자로서가 아니라 만인 앞에 그들 부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시상식에 참석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가십 전문지가 폭로한 톰 크루즈의 '게이' 관련 소문 때문이었는데, 그 기사에는 톰 크루즈가 점점 의혹이 짙어만 가는 자신의 게이 관련 소문을 무마하기 위해, 니콜 키드먼에게 그녀를 할리우드의 톱클래스 여배우로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일환으로 결혼과 입양의 단계를 밟게 된 것이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과의 결혼은 톰 크루즈의 게이 관련 소문을 막기 위해 이용된 '거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거래'는 할리우드 주변의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에 불과했지만, 사실이 아닐까 의심 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고, 그런 상황들에 큰 상처를 받은 니콜 키드먼은 휴식기를 가지며 뉴욕의 한 연기학교에 들어가 다시 처음부터 연기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 뒤 그녀는 곧 바로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감독의 영화 '투 다이 포(To Die For)'에서 작은 시골마을 TV방송국의 일기예보 리포터 역을 맡게 되고, 그 역할로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악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인정을 받게 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투 다이 포'로 니콜 키드먼은 1996년 1월에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컴백했다. 하지만 유독 아카데미 트로피와 인연이 없는 톰 크루즈의 영향일까 니콜 키드먼 역시 그 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영화 '여인의 초상'으로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자 지명에 실패했다.

'여인의 초상'을 마친 키드먼은 누적된 피곤을 풀기 위해 2주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쉬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코르셋 의상을 입고, 학대받는 19세기의 아내를 연기해야 했기에, 그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피곤한 상태였다.

▶톰 크루즈와의 키 차이, 붉은 립스틱으로 해결

키드먼은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편인 톰 크루즈와 함께 참석했다.
키드먼은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편인 톰 크루즈와 함께 참석했다.

차기작은 톰 크루즈와 함께 거장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을 택했다.

20년 가까이 은둔하던 천재 감독 큐브릭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출신의 극작가 '아서 슈니츨러'의 성적 집착과 부부간의 질투에 관한 이야기인, '트라움노벨르(Traumnovelle)'를 각색해 공을 들인 '아이즈 와이드 셧'이었기에, 그들 부부는 촬영을 위해 1996년 가을, 촬영지인 런던으로 이주할 정도로 열의가 높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 된 이 영화는, 촬영 내내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 어떤 관련 정보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아이즈 와이드 셧' 촬영 중간에, 키드먼은 새롭게 '크리스찬 디올'의 책임 디자이너를 맡게 된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초대를 받고 그의 오뜨 쿠튀르 데뷔를 보기 위해 파리 몽테뉴가에 위치한 '크리스찬 디올' 본사를 방문했다.

니콜 키드먼과 같은 나이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런던 남부 출신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패션계에서는 이미 니콜 키드먼 만큼이나 슈퍼스타였다.

그는 패션계 명문학교인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Central St. Martins)의 대학원 과정까지 졸업한 인재였으며, 졸업과 동시에 여러 브랜드와 백화점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전도유망한 디자이너였다.

1997년 1월, 파리의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존 갈리아노의 첫 번째 디올 쿠튀르 쇼에 대해, 패션일간지 WWD는 지금까지 표현한 적이 없는 최고의 찬사로 가득한 호평을 실었고, 디자이너들에게 까다로운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판 보그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Anna Wintour) 역시 그의 천재적인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존 갈리아노는 특별히 초대한 니콜 키드먼을 위해 1997년 1월에 열린 자신의 디올 쿠튀르 데뷔 컬렉션을 간단히 요약해서 그녀에게 특별히 선보였고, 그녀는 눈앞에서 이어지는 놀라운 광경에 계속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니콜 키드먼은 20번째로 선보여진 압생트(Absinthe:쑥색에 가까운 독한 술) 컬러의 드레스를 최종적으로 자신의 오스카 드레스로 결정했다.

키드먼은 "그 드레스를 보자마자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했어요. 보는 그 순간, '우아하면서 동시에 완벽해. 이런 드레스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드레스는 데카당트한 북경 오페라의 무대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허벅지 위까지 트여진 슬릿(slit)에 밍크 모피로 트리밍된 새틴 소재의 몸에 흘러내리는 드레스로, 등쪽은 망사로 폭포처럼 실크로 만들어진 술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몸통부분은 은은한 물빛과 사파이어 컬러의 실로 수놓아져 있어 그 반짝거림이 니콜 키드먼의 연한 파란 눈동자와 매치되었다.

미국판 '보그'지는 1997년 3월호에서 존 갈리아노의 이 드레스의 오묘한 컬러의 조화에 대해 '최고로 아름답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이 컬러 매치는 갈리아노의 상징적인 컬러로 자리잡게 되어 디올 쿠튀르를 대표하는 컬러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벌써 4명의 디올 쿠튀르 VIP고객은 한 벌에 3만 달러를 호가하는 이 핸드메이드 압생트 컬러의 드레스를 주문했고, 키드먼 역시 구매에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키드먼이 그 압생트 컬러의 드레스를 완전히 자신의 소유로 대중들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그 드레스를 최초에 주문하고 구입한 뉴욕 사교계의 거물, '앤 배스(Anne Bass)'에게 승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미국의 고급 겨울 휴양지 아스펜에서 스키를 즐기고 있었던 앤 배스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키드먼의 드레스 착용을 허락했고, 디올의 재단사들은 키드먼의 치수 측정과 1차 피팅 작업을 위해 그녀가 촬영 차 머물고 있었던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나 니콜 키드먼에게는 레드카펫 위에서 넘기 어려운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장벽이 하나 남아있었다. 그것은 신장이 180cm에 육박하는 니콜 키드먼에 비해 약 8cm정도가 작은 키의 톰 크루즈였다. 키 차이 때문에 언제나 그들의 투샷은 조화롭지 못했다.

니콜 키드먼은 언제나 그런 연유로 톰 크루즈와 함께 자리를 할 때는 하이힐이 아닌 굽이 낮은 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 전쟁관련 영화 '7월4일생'으로 톰 크루즈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1990년의 제 6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니콜 키드먼은 실버 컬러의 높이가 3cm정도 밖에 안 되는 낮은 굽의 구두를 착용했었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스타일리스트와 같은 패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니콜 키드먼 이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디올의 광고 캠페인까지 맡고 있게 되었던 이른바 디올의 '얼굴'이었던 그녀였기에, 흠잡을 곳 없이 글래머러스한 등장이 도리이자 의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해 스타일리스트 로렌 스콧(L'Wren Scott)과의 약속을 잡았다.

1997년 당시, 로렌스 스콧은 저명한 패션 포토그래퍼 '허브 리츠(Herb Ritts)'와 함께 '보그'지와 '베니티 페어(Vanity Fair)'지의 화보를 위한 스타일링을 맡고 있을 정도로 패션 전문가였고, 거기에 자신도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키였기에, 니콜 키드먼이 늘씬하게 디올의 드레스를 소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있어서 최상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먼저 로렌스 스콧은 함께 참석할 남편 톰 크루즈를 고려해 실크 소재의 연한 블루 컬러의 '마놀로 블라닉' 낮은 굽 구두를 준비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월요일, 부부는 배우 '맥 라이언(Meg Ryan)'의 모드 쉐그(mod shag) 헤어 컷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유명 헤어스타일리스트 '샐리 허시버거'에게 시상식을 위한 헤어스타일을 제안 받고 있었다.

그녀는 크루즈의 머리를 정돈한 뒤 완벽하게 드라이를 마친 후, 니콜 키드먼의 약간 붉은 빛이 도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깔끔하게 다듬고 부드럽게 정리한 다음, 8자 모양의 시뇽을 만들어 컬을 주었다. 그런 다음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정평이 나 있던 '케빈 오코인'에게 메이크업을 받았는데, 일종의 고정관념 중의 하나인, 빨강머리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니콜 키드먼의 입술에 자홍색 립스틱을 발랐다.

1997년 3월 24일, 제6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슈라인 오디토리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배우라도 반드시 600피트 거리의 레드카펫 위를 지나가야 했다. 벌써 그 레드카펫 위에는 턱시도를 입은 할리우드의 인사들과 어두운 톤의 드레스를 입은 몇몇 여배우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산드라 블럭, 위노나 라이더-가 자리하고 있었다.

톰 크루즈는 리무진에서 내리자마자 한번에 경쾌하게 레드카펫 위를 전진해 나갔고, 니콜 키드먼 역시 별로 높지 않은 굽의 마놀로 블라닉 힐을 신고 있었기에 그의 스텝에 맞춰 걸어갈 수 있었다.

현장의 많은 패션 관련인사들은 니콜 키드먼의 그 압생트 컬러의 디올 드레스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했고, 여기저기서 찬사가 쏟아졌다.

시상을 위해 연단에 오른 니콜 키드먼의 디올 드레스는 수많은 조명 아래서 더욱 진귀한 빛을 내었는데, 마치 하나의 색상이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단계적인 차이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날 톰 크루즈는 평론가들의 찬사와 각종 영화 전문지들의 수상 예상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했다. 하지만 니콜 키드먼과의 멋진 커플 샷으로 한동안 말이 많았던 불화에 관한 소문은 잠재울 수 있었다.

▶크리스찬 디올에서 샤넬로…. 몸값 높아진 키드먼

키드먼은 샤넬의 대표향수 No.5의 얼굴로 익숙하다.
키드먼은 샤넬의 대표향수 No.5의 얼굴로 익숙하다.

9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는 뜻밖의 증시호황으로 소비시장의 경기가 큰 폭으로 상승했고, 유행을 선도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의 매출 역시 급신장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패션 브랜드들이 광고 캠페인에 쏟아 붓는 비용의 규모 또한 획기적으로 거대해지는 경향을 보이며, 패션모델보다는 바로 구매로 직결되는 파워를 지닌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에게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1998년까지,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에게 거의 1년에 한두 번 정도 커버를 내주던 유명 패션지들도 1998년 이후부터는 1년 12달의 이슈 중 거의 대부분의 커버에 할리우드 유명인사들을 등장시키게 되었고, 그로 인해 패션 모델이 커버에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희귀해진 상황으로 역전되게 되었다.

미국판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말대로 과히 '오스카 열병(Oscar Madness)'라고 표현할 만 했다.

니콜 키드먼은 디올과의 협력관계가 끝나고 난 후, 2003년 샤넬과 지면 및 TV광고를 포함해 700만 달러의 광고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니콜 키드먼은 디올이 아닌 샤넬의 대표향수인 'No.5' 광고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물론 이 계약에도 그녀가 참석하는 모든 일급 행사(각종 이벤트는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까지)에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Karl Lagefeld)'가 특별히 제작한 샤넬의 의상을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아닌 영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건이 포함되었다.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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