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 기자의 인증샷(2)] 이계창 “배우하지 말라 소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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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3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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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계창은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중 가장 ‘가방끈’이 긴 배우로 꼽힌다.

서울예술대학 90학번인 그는 용인대에 편입해(99학번이다) 연극학 석사를 받았고,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연출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현재는 논문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연극연출이라니. 배우가 아닌, 연출가로 나설 마음이 있는 것인가.

실제로 이계창은 뮤지컬 작품 연출 경력이 있다. 2005년 평촌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 ‘발자욱’이란 작품이다.

옆에서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던 한성식 배우가 끼어들었다.

“제가 그 작품 했잖아요. 그때 계창이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연출로도 감각이 있다’. 그런데 그 말 바로 바꿨어요. ‘연출이 백배 낫다. 배우하지 마라. 배우로는 안 되고, 연출로 성공하겠다’. 계창이가 작품 전체를 디테일하게 분석하는데 귀신이거든요.”

선후배들 사이에서 ‘분석’하면 ‘이계창’이다. 본인도 이 말을 크게 부인하지 않았다. 작품 캐릭터 분석으로 모자라 만나는 사람마다 분석을 하는 통에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이계창이 뭔가 말이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선후배들은 “또 분석하고 있다”라며 놀릴 정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계창 배우도 할 말이 있다.

“분석이라기보다는 관찰을 한다고 해야 하나. 연기는 말 그대로 기술입니다. 그럴 듯하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기술의 준말이 연기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만 의존하는 연기를 저는 싫어해요.”
#5.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지금은 예전과 달라졌지만, 이계창은 엄청난 대식가로 유명했다. 본인도 “공기밥 열 공기는 기본이었다. 지금도 밥심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여기에서 한성식 배우의 회고담 한 토막.

“점심에 같이 중국음식점에 갔어요. 나는 짬뽕, 계창이는 자장면 곱배기를 시켰죠. 내가 반쯤 먹을 즈음 계창이는 자장면 곱배기를 다 먹고 공기밥을 주문해 남은 양념에 비비더라고요. 내가 다 먹고 나니까 ‘형, 나 짬뽕 국물 좀 먹어도 돼?’하는 거예요. 그릇을 넘겼더니 공기밥을 또 시켜서 국물에 말아서는 다 먹어버렸죠.”

“‘너 정말 대단하다’하고 식당을 나왔는데, 계창이가 ‘좀 뭔가 아쉽다’하더니 좌판에서 파는 찹쌀 도너츠를 대여섯개 사서 게 눈 감추듯 먹더라고요. 그러더니 ‘이제 좀 살 것 같네’하는 거에요.”

이 말을 듣더니 이계창이 “어려서 어머니한테 많이 맞았어요. 밥 많이 먹는다고”라며 ‘우하하’ 유쾌하게 웃었다.

신진대사가 남보다 빨라서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란다. 나잇살이 붙어 지금은 키 180cm에 74kg 정도의 몸이다. 한창 많이 먹을 1995년 무렵에는 65kg이었단다.
#6. 배우들은 무대에 올라가기 전 몸을 푼다. 몸을 풀어야 감정도 풀린다.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하면, 객석에서 볼 때 배우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눈물을 살짝 흘리는 장면이라면, 아예 확 쏟아질 정도로 ‘웜업’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계창 배우는 이 ‘웜업’을 많이 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이쯤에서 다시 한성식 배우가 등장한다. 그는 서울가무단(현재의 서울뮤지컬단) 시절 이계창의 직속 선배였다.

“예전에 둘이 같이 ‘카르멘’이란 작품을 할 때였어요. 무대에서 웃통을 벗는 장면도 없는데 계창이가 엄청나게 웜업을 하는 거예요. 줄넘기를 수 천 번 뛰고, 바벨을 들고 정말 이를 악 물고 하더군요. 땀을 뻘뻘 흘리고 샤워를 마친 뒤 무대에 딱 올라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 그만 성대가 제대로 ‘우라카이(뒤집어짐)’ 나버렸어요. 엄청난 삑사리가 난 거죠.”

“장면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오더니 계창이가 ‘형 … 나 기운이 없어’하더라고요. 너무 웜업을 해서 성대도 힘이 빠져버린 거예요.”

이 얘기를 듣던 이계창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 마디 했다.

“형 … 그 얘기는 이제 그만 해 ….”
#7.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에게나 자신을 뮤지컬로 이끈 운명적인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이계창에게는 ‘미스 사이공’이 그랬다.

복학생 시절 연습실에서 누군가 틀어놓은 ‘미스 사이공’의 서주를 듣고는 그만 ‘세상이 멈춘 듯’한 경험을 했다.

당시는 CD를 들고 동네 레코드점에 가면, 돈을 받고 CD 음악을 테이프로 옮겨 주었다(물론 불법이다). 그 테이프를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지금도 듣는다. 족히 수만 번은 들었을 것이다.

연극배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트레이닝하던 사람이 뮤지컬을 하자니 ‘노래’가 문제였다.

‘노래를 잘 하는 법’이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 레슨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선생님, 선배, 친구, 후배를 가리지 않고 일일이 찾아가 ‘노래 잘 부르는 법’을 물었다. 당시 도움을 준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 중에는 서범석, 김법래도 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게 된 거죠. 상대방이 선뜻 나에게 ‘이건 이런 거야’하고 입을 열게 만들려면 술이 필요하더라고요. ‘소주 한 잔’이야말로 제게는 가장 훌륭한 ‘무기’였습니다.”

그리하여 뮤지컬배우가 된 이계창은 ‘갓스펠’이라는 작품으로 배우 데뷔를 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배의 ‘꾐’에 넘어간 거죠. 그나마 서울도 아니고 대전공연이었어요. 세트를 트럭에 싣고 운전을 해서 대전으로 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무대 스태프가 따로 없어 공연 전날 배우들이 공연장에 도착해 직접 세트를 무대에 세웠다. 땀 흘려 세트를 올리고 있는데 새벽 4시쯤 되어 극장장이 나타났다.

극장장은 “젊은 사람들이 참 일을 잘 한다. 그런데 내일이 공연인데 배우들은 어디에 있냐”라고 물었다.

모두들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8. 인터뷰는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술이 거나해질 무렵, 이계창 배우가 말했다.

“뮤지컬 배우가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그는 알고 있을까.

뮤지컬 무대에서 이계창이란 배우를 볼 수 있는 한, 관객들도 너무나 행복해 하고 있다는 사실.
밑바닥에 깔린 마지막 소주 한 잔을 그에게 따라 주었다.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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