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파탄 日 유바리市 주민들은 왜 30세 외지인 데려와 市長에 앉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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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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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지방선거 드라마’ 화제

24일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 시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시장에 당선된 스즈키 나오미치 씨(가운데)가 지지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도쿄도 공무원이던 스즈키 씨가 보여준 헌신적인 유바리 사랑에 매료돼 그에게 시장 출마를 권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24일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 시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시장에 당선된 스즈키 나오미치 씨(가운데)가 지지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도쿄도 공무원이던 스즈키 씨가 보여준 헌신적인 유바리 사랑에 매료돼 그에게 시장 출마를 권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24일 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 시는 잔칫집 분위기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은 30세 청년의 뺨에 케이크를 찍어 바르며 “오메데토(축하)”를 외쳤다.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씨는 이날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시장에 당선했다.

그러나 젊은 시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장밋빛 영광이 아니다. 유바리 시는 일본의 2000개 가까운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한 재정파산 단체다. 한때 잘나가던 탄광도시였지만 1990년 마지막 탄광이 폐쇄된 뒤 재정이 급속히 나빠졌다. 무리하게 관광사업을 벌이다 거액의 빚을 떠안고 2007년 파산 선언을 했다. 각각 7개와 4개였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하나로 통폐합하고 세금을 올리는 대신 복지수준을 낮췄지만 아직도 300억 엔의 빚이 남아있다. 시민들은 하나둘 고향을 떠나 1990년 2만여 명이던 인구가 20년 만에 반 토막 났다. 270명이던 시 직원은 80여 명으로 줄었다. 시장 월급은 전국 최저인 25만9000엔(약 330만 원).

매력이라곤 찾을 수 없는 시장직에 스즈키 씨는 왜 출마했을까. 원래 그는 도쿄도 공무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도 공무원이 된 후 호세이(法政)대 야간부를 다니며 지방자치를 전공했다. 파산한 유바리 시의 행정지원을 위해 도쿄도가 파견한 ‘재정 구출대’의 일원으로 2008년 초부터 2년간 현지 근무한 게 유바리와의 인연의 전부.

지난해 3월 파견근무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간 그를 다시 유바리로 부른 것은 시민들이었다. ‘유바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을 비롯한 시민들은 지난해 11월 그를 찾아와 “내년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시민들이 “유바리를 살릴 사람은 스즈키밖에 없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도쿄도 소속의 ‘파견 공무원’이었지만 토박이보다 더 큰 열정을 쏟으며 유바리를 위해 몸을 던졌다. 시의 젊은 직원들 모임을 만들어 시 재생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한편 ‘유바리 관광협회’ ‘유바리 재생 시민회의’ ‘어린이 문화모임’ 등 민간단체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침체된 도시의 활성화에 매달렸다. 인기 특산품 ‘유바리 멜론’의 과즙을 이용한 ‘유바리 멜론 팝콘’을 고안한 것도 그였다. 유바리 재생 프로그램에 시민 목소리를 담기 위해 1600가구 이상을 발로 뛰며 설문조사를 했다. 유바리를 방문한 총무성 차관이 탄 버스에 뛰어올라 설문조사 결과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채택된 재정계획에 설문 결과가 많이 반영됐다. 원래 파견 기간은 1년이었지만 “1년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1년 연장을 신청했을 정도로 그의 유바리 사랑은 남달랐다.

시장 선거에는 수백억 엔의 재력을 앞세워 ‘유바리 재정 회복’을 공약한 건설업체 회장, 자민당과 공명당의 전폭 지원을 업은 전 국회의원 등 쟁쟁한 거물이 출마했지만 시민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마음을 얻은 ‘젊은 외지인’에게 무릎을 꿇었다. 스즈키 신임 시장은 공무원 시절보다 연봉이 200만 엔이나 줄어들지만, 환한 얼굴로 당선 소감을 밝혔다. “30세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시민들께 감사합니다. 인생을 걸겠습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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