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눈에 띈다. 200cm가 넘는 거구들이 즐비한 코트에서 175cm의 키는 찾기 쉽다. 주름이 깊은 이마에 어릴 때 말썽깨나 부렸을 것 같은 얼굴도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유니폼도 같은 팀 동료들과 다르다. 삼성화재 리베로 여오현(32)을 만났다.
“왜 저 같은 선수를 인터뷰해요?”
여오현이 쑥스러운 듯 물었다. 그는 2일 현대캐피탈과의 대전 경기에서 최초로 리시브 3500개를 돌파했다. 이 부문 통산 2위 최부식(대한항공)과는 900개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가 은퇴해도 다른 선수가 쉽게 넘을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리베로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화려한 공격수의 몫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부럽고 샘도 났죠. 이제는 신경 안 써요. 제가 아무리 잘 받고(리시브), 건져내도(디그) 공격수들이 득점으로 연결해야 빛이 나니까요.”
대전 유성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레프트를 맡았던 여오현은 운동 신경이 뛰어났지만 키가 작았다. 성장에 좋다는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게 해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키는 생각처럼 크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감독에게서 레슬링 등 다른 운동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받았다.
“고교 때 성장이 멈췄어요. 홍익대에 입학한 뒤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죠. 키와 상관없는 종목도 많은데 왜 하필 배구를 선택했을까 후회도 했고요. 그런데 대학 2학년 때 리베로 제도가 도입된 거예요. 천직이다 싶었죠.”
리베로는 그를 위한 자리였다. 여오현은 이내 두각을 나타냈고 국가대표로 뽑혔다. 벌써 10년째 빼놓지 않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혜택도 받았다.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원년을 포함해 6시즌 동안 4차례 수비왕(리시브와 디그)에 올랐다. 5일 현재 수비 부문 1위도 그다.
여오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동갑내기 김일순 씨를 고교 3학년 때 우연히 다시 만나 8년 연애 끝에 2004년 결혼했다. 믿기 어렵지만 살면서 그 흔한 미팅 한번 해본 적 없다고 강조했다.
“1년에 열흘 정도 빼곤 배구공과 살아요. 집에서 자는 날이 두 달 정도 되려나. 거의 매일 공을 200개 이상 받다 보니 팔에 감각이 없어요.”
팔을 보여 달라고 했다. 꼬집어도 아프지 않고 주삿바늘도 잘 안 들어간다고 했다. 여오현은 그런 두 팔로 삼성화재를 4차례나 정상에 올려놨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삼성화재에 있었지만 이번 시즌이 가장 힘드네요. 든든했던 (석)진욱이 형이 부상으로 빠진 뒤 저부터 흔들렸으니까요. 적응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나아지겠죠.”
여오현은 상대의 강한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디그를 좋아한다. 몸을 날려 공을 살리고, 살린 공을 공격수들이 득점으로 연결할 때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고 했다. ‘작은 거인’ 여오현이 가장 눈에 띌 때다.
대전=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철벽 리베로` 여오현
대한항공 다시 ‘이륙’ KEPCO45에 완승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이 상승기류를 만나 제대로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5일 인천 도원시립체육관에서 열린 KEPCO45와의 경기에서 3-0(25-20, 25-22, 25-13)으로 이겼다. 올 시즌 9승(1패)째로 2위 현대캐피탈(7승 3패)과의 승차를 벌리며 선두를 굳건히 지켰다. 특히 1일 LIG손해보험에 1패를 당했지만 현대캐피탈, 삼성화재 등 강팀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만년 3위’라는 꼬리표를 떼고 올 시즌 태풍의 핵으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여자부 현대건설은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케니(31득점)와 황연주(23득점), 양효진(15득점) 삼각편대의 활약을 앞세워 3-2(25-23, 24-26, 17-25, 27-25, 15-8)로 이겼다. 현대건설은 6승(2패)째인 이날 승리로 도로공사(5승 2패)를 제치고 하루 만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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