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그래도 기부는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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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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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이란 말이 있다. 밥 열 술이 한 그릇의 밥을 만든다는 말이다. 다시 읽으면 열 사람이 밥을 나누면 한 사람을 먹인다는 말도 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고봉밥 한 그릇’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바로 ‘십시일반’이 아닐까. 생명을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 행위다.

모금회 비리로 신뢰에 금갔지만


기부문화는 근대자본주의가 일찍이 발달한 서구에서 출발한 문화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국인만큼 주변을 돌아보려는 이들도 드물다. 예부터 동네에 걸인들을 먹이고 나그네를 재우고 먹이는 걸 당연히 여겼다. 멀리서 온 손님을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대접하는 일은 전통이었다. 이는 홍익인간, 천지가 낳은 것 중에 인간이 가장 귀하다는 동양적 사고와도 맥이 닿는다. 천지만물과 인간은 하나라는 유기적 세계관이다. ‘측은지심’이라 했고 ‘역지사지’라 했듯 인간의 가장 인간다움이란 무엇보다 ‘연민’이라 가르쳐 왔다.

한민족은 정이 많아 눈물이 많은 민족이다.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국민성금이 이토록 신속하게, 이토록 많이 모이는 나라도 드물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올해 5월 천안함 희생자를 돕기 위한 성금이 전국에서 395억 원이 모였다고 한다. 모금 한 달 만에 단일 사안으로 가장 많은 기록이었다. 연말 ‘사랑의 온도탑’ 행사로 올해 모금액이 지난해 3300억 원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얼마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사건은 우리 사회의 모금, 기부문화에 대한 근본적 신뢰에 금이 가게 했다. 지하철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구걸하던 맹인이 구걸이 끝나자 지팡이도 버린 채 눈을 번쩍 뜨고 나가버린 것 같은 배신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이 연말 각종 기부와 모금운동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했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 물질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징가치나 신뢰가치다. 21세기의 트렌드가 공감이나 소통이 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신뢰가 없다면 공감도 역지사지도 없다.

이것이 비영리재단이 공인집단으로 더욱 엄격한 사명감을 가져야 할 이유이며, 비영리재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공인의 지위를 이 사회가 주었을 때 아름다운 의무도 생겨나는 법이다. 그런 점이 공인이 성금과 기부문화에 앞장서야 할 이유다. 몇몇 연예인이 이미 본을 보이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확산을 위해 선거에 나가는 공직후보자도 참여하길 제안한다. 후보자들은 선거에 나가기 위해 병역사항, 5년간 납세 기록, 전과기록을 공개한다. 여기에 5년간 기부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하였는지도 보태자는 것이다.

나눔의 손길로 따뜻한 겨울을

우리나라 기부 참여율은 높아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평균 기부액이 2003년 6만1100원에 비해 지난해에는 17만3200원으로 3배 가까이로 늘어났다고 한다. 기부 참여율도 높아졌고 자원봉사 참여율도 높아졌다. 장기기증과 신체기증도 늘고 있다. 일부 모금기관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한국인은 ‘사람이 희망’이라는 신념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연말이다. 1일부터 구세군 자선냄비도 종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생이 본질적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천하보다 귀하다고 생각할 때,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날 때 이 세상은 살 만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마음을 모으면 불공평을 조금은 평평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겨울을 기다린다.

김용희 소설가 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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