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정주현]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초능력자의 비밀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8일 17시 19분


코멘트
10일 개봉하는 영화 \'초능력자\'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두 젊은 배우의 눈빛과 연기력이다. 사진제공 영화사 집.
10일 개봉하는 영화 \'초능력자\'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두 젊은 배우의 눈빛과 연기력이다. 사진제공 영화사 집.
새 영화 '초능력자'를 두고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우스갯소리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두 꽃미남의 대결'이라든가, '여자친구와 함께 보면 안 되는 3대 영화 중 하나'라든가, 또는 '캐스팅 디렉터가 진정한 초능력자'라든가 하는.

그렇다. 이 영화에는 정말 잘 생긴 두 남자 배우가 나온다.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두 배우의 미모만으로 가볍게 평가하기엔, 이 영화의 비범함이 예사롭지 않다.

초인(강동원 분)이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초능력자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졌다. 평범하지 않은 많은 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왜 나를 낳아준 부모조차 나를 죽이려 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그런 어두운 어린 시절을 말이다.

▶ 평범한 초능력자 VS 비범한 보통 사람

하지만 그는 그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악당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가끔씩 생활비를 훔치러 사채업자나 전당포에 찾아갈 때에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뿐이다. 악당도 영웅도 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평범하고 조용한 삶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규남(고수)이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에, 원양어선을 타거나 폐차장에서 일하는 등 온갖 밑바닥 삶을 전전해 왔다. 말투도 어눌하고 어딘지 조금 모자란 듯도 하다.

하지만 그는 '깨끗한' 사람이다. 초라한 행색의 그를 두고 사람들이 으레 의심했던 전과기록도 없고 팔에 마약을 주사한 자국도 없다. 욕심이나 편견도 없다. 그저 순수하고 진지한 청년일 뿐이다. 아무리 길거리를 걸어 다녀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초인에게만큼은 특별하다. 초인의 초능력이 그에게만 통하지 않으므로.

이 둘은 규남이 일하는 전당포에 초인이 돈을 훔치러 오면서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전당포 안의 모든 사람을 멈추게 한 초인의 초능력적 통제를 규남이 깨뜨린 순간, 궁극적으로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서로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평범한 초능력자와 비범한 '보통사람'은 서로의 존재에 큰 물음표를 던진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평범한 초능력자와 비범한 '보통사람'은 서로의 존재에 큰 물음표를 던진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 영화는 탈 장르적 영화다. 픽션이고 판타지이지만 주인공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두 남자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이는 버디영화도, 선과 악의 전쟁도 아니다. 초능력을 소재로 하지만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의 이야기 역시 아니다. 잿빛 도시를 배경으로 두 남자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깨어지고 피를 흘리지만, 범죄를 파헤치는 스릴러는 더더욱 아니다.

"왠지 이상한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감독은 영화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이 말은 영화를 함축하여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초능력자'라는 타이틀을 정면에 걸고 있지만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출발 지점부터가 다른, 왠지 이상하면서도 기묘한 영화.

어쩌면 이 기묘함은 이 영화가 SF 스릴러라는 외형적 틀을 걸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통제하려는 자와 통제 받지 않는 자. 수많은 사람을 조종하여 자신이 곧 다수가 될 수 있는 초인과 오로지 자신 하나뿐인 규남. 그러나 오히려 자신이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타인의 관계를 맺지 못하는 외로운 초인과 남을 조종할 수는 없으나 수많은 타인 속에 둘러싸여 사는 규남이란 남자의 관계의 역설.

"수많은 나와 싸우는 네가 이길까, 아니면 혼자인 너와 싸우는 수많은 내가 이길까."

초인은 이렇게 묻는다. 이는 초인과 규남 각 개인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조금 확장시켜보면 개인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다수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집단권력의 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개인의 저항. 개인, 집단, 사회, 국가로 확장되는 인간 사이 역학관계의 본질이 이 질문이 향하고자 하는 진정한 귀착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줄곧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지금껏 한국영화에는 전례가 없었던 외국인 배우들의 비중 있는 출연은 자칫 한없이 심각해질 수도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긴장의 완급을 조절한다. 각각 가나와 터키 출신이라는 '버바'와 '알' 이 두 배우는 한국 사람보다 더 능숙한 듯한 한국어로 적재적소에서 유머코드를 맛깔 나게 보여준다.

또한 초능력이라는 무형의 소재를 영상화함에 있어 미장센을 극대화한 감독의 능력 역시 주목할 만 하다. 다소 작위적이고 과장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묘하게 어긋나거나 조금 이상하거나' 하는 느낌을 주며 극적인 긴장을 더하는 촬영기법과 곳곳에 숨어있는 신인감독의 재기 발랄함은, 그가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도 한다.

특히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 한 듯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점심식사 장면, 거대한 도시건물의 불빛 속에서 늦은 시간까지 노동의 족쇄에 메어있는 현대인들을 바라보는 초인의 건조한 시선, 그리고 신의 영역에 도전이라도 하는 듯한 초인과 규남의 옥상 대결 장면은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편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영화적 설정이나 장치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반전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는 규남의 출생적 근원이라든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초인을 옭아맨 의족의 의미 등, 극중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몇 가지 고리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맥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만일 이런 부분들이 좀 더 진지하게 다루어졌다면, 스토리는 더욱 개연성 있고 정교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초능력자'는 그 동안의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러모로 비범하고 새로운 영화다. 대중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관객들과 한발을 같이 하고 다른 반발만 앞서 나가라고 했던가.

이 신선한 충격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janice.jh.chung@gmail.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