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⑨] 몽골 허허벌판서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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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3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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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 몽골 홋드 부근(6월 25~26일)

빨래판 길에서 셋째(심재신)의 손목이 다들 걱정이다. 아니, 오늘 그가 통증을 견디고 홋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홋드 100km 앞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해 가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셋째가 포기하려는 눈치를 보인다.

"전 손목이 아파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국 팀원들의 설득으로 다시 출발하지만 이미 시간을 많이 지체하여 어둑어둑해졌고 구름은 저 앞에 소나기가 내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불안하다. 게다가 나에겐 헤드라이트가 없어 야간행군을 위해 둘째(김은석)가 바짝 붙어 쫓아오며 불빛을 나눠주고 있지 아니한가?

순간, 길이 갑자기 모래 무덤으로 돌변하더니 로드가 통과한 뒤 모래 먼지가 확 피어올라 사방이 아무것도 안보인다. 모래무덤에 박혀 곧장 넘어지고 만다. 내 뒤에 바짝 붙어오던 둘째도 넘어진 나를 피하려다 같이 모래구덩이에 박혀버린다.

넘어진 모터사이클을 일으켜 세우고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30분도 남지 않았고 온통 구름으로 덮여 깜깜한 밤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심전심으로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자고 가자"는 합의가 이뤄진다. 방을 잡고 짐을 풀고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첫째 사고후 수습.
첫째 사고후 수습.

▶ 걱정되는 셋째의 고장 난 손목

밤에 넷이 모여 셋째의 손목에 대한 걱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가장 걱정인 사람은 셋째 본인이다.

"저 웬만하면 아프다는 얘기 안하는 사람인데요, 핸들을 잡고 있을 수가 없네요. 서울 돌아가서 후유증이 남지 않을까요?"

따지고 보면 우리 팀원 전체가 부상병동이다. 나는 봉와직염을 앓고 있고, 둘째는 이미 몽골 전부터 왼쪽 늑골이 골절된 듯한 통증을 안고 출발한 상황이다. 특히 둘째는 촬영 담당이기에 짐이 가장 많은 터라 오른팔에 심한 근육통이 생겼다.

"형님, 저도 허리가 무척이나 아파요"

누구나 건강할 것이라고 믿어왔던 막내(최태원)마저 여행처음부터 넘어진 형들 모터사이클을 세우는데 솔선수범했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투정이다.

그간 궂은일은 막내가 도맡아 처리해왔다. 가장 힘든 일이 넘어진 바이크 일으켜 세우기다. 무려 300kg에 달하는 모터사이클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막내를 바라보면 우리는 "너 힘 좋다!"하며 칭찬하곤 했지만, 몽골에서는 하루에 10번도 넘게 이러고 있으니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허리가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다. 순간 우리는 몽골사막을 넘는 '모험단'에서 '환자단'이 되어버렸다.

서울이라면 "근육을 다쳤어요! 인대가 늘어났어요!"라고 하소연하는 환자가 있다면 부목을 대주고 "2주일은 무리하지 마시고 쉬세요"하고 처방하면 끝이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이런 여유가 불가능하다. 내일 길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무턱대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명이 두 대의 모터사이클을 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통제 소염제 근이완제를 줄 수 있을 뿐 나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이라도 통증을 하소연하게 되면 팀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사고난 바이크를 바라보는 이민구 팀장.
자신의 사고난 바이크를 바라보는 이민구 팀장.

▶ 우리는 몽골사막을 횡단하는 ‘환자단’

토요일 아침 9시,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을 꾸리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러 모이기 시작한다. 심한 손목 통증으로 더 이상 진행이 무리일 것 같다는 셋째가 차를 알아보겠다고 나선다.

숙소로 모인 마을사람들에게 셋째는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까지! 모타치클! 딜리버리!"를 요청한다. 마을 사람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가서 자기들끼리 가격을 상의하고 다시 들어온다. 670km이고 기름값까지 합쳐서 650달러, 오늘 밤새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순간 셋째는 나의 의사를 묻는다.

"형님도 트럭으로 가실 거예요?"

"아니야 난 죽어도 완주할 거야"

내 깊은 곳에서 이런 강인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팀원들은 행장을 다 꾸리고 셋째의 모터사이클이 트럭에 실리는지를 확인하고 떠나기 위해 다시 기다린다. 이내 봉고차가 도착하고 뒷좌석을 떼어내더니 폐타이어를 하나를 깔고 모터사이클을 적재한다. 이들의 행운을 기원하며 우리먼저 길을 출발한다.

빨래판 길과 모래무덤의 반복이 다시 시작된다. 이제는 조금 더 비장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막내!(태원) 오늘은 네가 로드에 서라. 지금까지 맨 뒤에서 흙먼지 맡으며 고생했는데 앞에서 흙먼지 없이 시원한 공기 맞으며 몽골을 달려봐라."

"형, 제가 맨 뒤에 가다 형님들 넘어지시면 일으켜 세워야 하잖아요."(태원)

"이제 안 넘어질게."

멀고 먼 돌무지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진동이 온 몸을 타고 전달된다. 1시간쯤을 달리다 둘째가 바이크를 급정거한다. 가슴팍에 매달아 놓은 소형 캠코더가 진동에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을까! 그 안에 3일 동안 우리가 고생했던 영상이 모두 담겨 있으니 둘째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이다. 그는 용감하게도 뒤로 돌아가 찾아보겠다는 결심을 내비친다.

하지만 몽골의 길은 왕복 50차선이 넘는다. 사막과 초원에 차들이 지나간 길은 모두 차선이 된다. 우리가 온 길을 되돌아 가려해도 몇 번째 차선으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길을 50km를 되짚으며 담뱃갑만한 카메라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안의 영상이 그에게는 그만큼 소중하기에 말릴 수 없었다.

알타이호텔의 주인 (한국말 가능)
알타이호텔의 주인 (한국말 가능)

▶ 빨래판 길의 진동에 떨어져 나간 소중한 ‘캠코더’

무려 1시간이나 기다려도 둘째는 돌아오지 않는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혼자서 넘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 중 누구 하나가 뒤따라가야 하나?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갈 체력이 남아있질 않고 모래무덤도 무섭게 느껴졌다. 막내에게 가보라고 할 상황도 아니다. 고맙게도 막내가 길을 나선다. 고마울 뿐이다. 조금 더 기다리니 셋째의 모터사이클을 실은 차량이 도착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둘째 은석이 봤어요. 뒤에서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물론 캠코더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실망을 가득 안은 채 셋째의 바이크를 적재한 봉고차와 함께 출발한다. 주행 속도는 이제 모터사이클이 웬만한 차량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봉고차와 바이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몽골의 사막을 달린다.

홋드를 지나면서 길의 모래는 현격히 줄어들며 본격적으로 알타이 산맥의 험준한 산들이 보인다. 산과 산 사이 구릉에는 큼지막한 호수도 나타난다. 일단 물이 보이니 반가웠다.

그러나 곧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시냇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물을 건널 때는 모터사이클을 세우고 사람이 먼저 걸어서 건너본다.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를 가늠하고 머릿속으로 넘을 길을 그린 뒤 모터사이클을 타고 건넌다. 걸어서 건널 때는 단단해 보였던 물속 바닥이 육중한 바이크가 지나가려니 푹푹 파이고 미끈미끈하다.

이런 상황에서 짐이 가장 많은 둘째가 가장 불리하다. 모터사이클 위로 짐이 너무 많아 아래 바퀴가 휘청하면 위의 짐은 심하게 휘청거린다. 짐을 미리 옮겨놓고 모터사이클을 건넜어야 했는데….

물을 다 건너는가 싶더니 바닥 물가에 턱을 만나 기우뚱하더니 이내 물로 넘어진다. 사람과 바이크가 오른쪽으로 누웠다. 순식간에 모두 달려들어 차량의 촬영장비가 들어있는 가방들을 건져낸다. 다행히 흠뻑 젖지는 않았지만 물기가 장비를 위협한 것은 사실이다.

둘째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몸을 떨고 있다. 더 이상 운행은 불가한 것 같다. 어차피 주말을 몽골에서 보내야 하니 서두를 필요도 없어졌다. 셋째의 차량을 보내고 야영을 하기로 한다. 젖은 짐을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봉오리가 눈 덮인 알타이 산맥, 그 험준한 산 아래서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든다. 정말이지 힘든 하루였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투로드팀의 몽골지역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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