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 시대]<상>교육현장 지각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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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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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성-자율고’ 맞서 ‘혁신학교’ 기치… MB정책과 충돌

[혁신학교]
“자율고는 소수 귀족학교” 반대… 경쟁위주 시스템 대수술 요구
[다른 현안]
초빙형 대신 내부형 교장공모제 선호… 교원평가는 영향 없을 듯

특목고 입시설명회에 모인 학부모들. 6·2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선 특목고 자율고 등 기존 교육정책에 대해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특목고 입시설명회에 모인 학부모들. 6·2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선 특목고 자율고 등 기존 교육정책에 대해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중 6곳은 다음 달 1일 진보 성향 교육감이 취임한다. 이 중 2곳의 교육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 출신이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은 사상 최초다. 진보 성향 교육감이 취임하는 6개 시도의 학생은 전국 학생의 56.1%(2009년 기준)다. 교육계에서는 ‘MB 교육’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반응이다. 교육계 인사들은 “물과 기름이 섞였다”며 “진보 교육감들은 현 정부 교육정책을 ‘소수를 위한 수월성 교육’으로 정의하고 대폭 수술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와 교육청이 새로운 협력 관계를 형성해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적지 않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제시한 대안과 정부 정책의 연관성을 짚어봄으로써 앞으로 불어닥칠 교육 현장의 변화를 3회에 걸쳐 긴급 점검해 봤다.》

이번 선거 이전까지 전국 교육감 16명 중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에 맞서 반대 소신을 밝힌 후보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혼자뿐이었다. 교육감 선거는 현직 프리미엄이 강해 이번에도 보수 교육감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현직 교육감은 5명이 낙선한 반면 진보 교육감은 5명이 늘었다.

○ 300 대 300

진보 교육감들은 자율형사립고(자율고) 확대를 중심으로 한 현 정부의 ‘고교 자율화 300’ 프로젝트에 반대 의견이 강하다. 자율고가 학교 간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학교별 지역별 특성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는 ‘혁신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현재 33곳인 혁신학교를 200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혁신학교 300’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광주 장휘국, 강원 민병희 교육감 당선자도 주요 공약에 혁신학교가 포함돼 있다. 혁신학교 지지자들은 “우리 교육은 이미 경쟁 과포화 상태인데도 현 정부가 무한경쟁만 도입하려 한다”며 “혁신학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혁신학교는 학급당 학생수는 25명 이하, 학년당 6개 반 이하로 줄이는 것을 원칙으로 교육과정 운영에 일정 부분 자율권을 보장한 학교를 말한다. 학교 운영에는 교사와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지역 공동체가 적극 참여한다. 자율고를 중심으로 한 현 정부 학교 모델이 자율과 경쟁을 강조한다면 혁신학교는 균형이 키워드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지역 사회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기 때문에 혁신학교를 특정한 형태로 딱 꼬집어 정의하기는 어렵다”며 “단 주입식 교육보다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같다”고 말했다.

한 교육계 인사는 “혁신학교는 성적보다 적성, 협동·토론 수업, 과정 중심의 질적 평가 등을 강조한다. 이는 ‘성적 공개 후 줄 세우기를 통해 학교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요소”라며 “혁신학교가 교과부 대 진보 교육감 사이의 주(主) 전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과부에서는 혁신학교 수가 늘어도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자율고 정책과 혁신학교는 정책 방향이 달라 충돌 우려가 적다”고 말했다.

하지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3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지역에서 자율고를 더 이상 지정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자율고 지정에 필요한 재단전입금을 마련할 만한 재단이 서울을 제외하면 거의 없어 서울에 자율고를 추가로 설립하지 못하면 사실상 추가 설립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 수월성 교육 vs 평등 교육

진보 교육감들은 이미 운영 중인 특목고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당선자는 “특목고나 자율고는 특권층만을 위한 학교로 차별 교육을 하는 것”이라며 “이는 평등을 지향하는 공교육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특목고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들도 여럿이다.

교장 공모제도 정부 방침과 의견이 엇갈린다. 진보 교육감들 대부분은 내부형 공모제를 이상형으로 보고 있다. 내부형 공모제는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도 교장 공모제에 응할 수 있는 형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초빙형’으로 교장 자격증이 필수다.

교원평가제는 교육감 성향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교원평가제는 현재 법적 뒷받침이 없는 제도지만 학부모들 사이에 찬성 의견이 높다. 이 때문에 교육감들이 섣불리 거부 의사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진보 교육감 수가 늘어나자 교과부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육감과 정책 협의가 필요한 부서에서는 미리 갈등 요소를 점검하는 회의를 열기도 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혹시 충돌이 빚어질지 몰라 ‘예방주사’를 맞아 보자는 의미”라며 “진보 교육감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면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원희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회장 출신인데도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 둘이나 당선된 건 의미심장하다”며 “솔직히 앞으로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교육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잘 예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 단체는 진보 교육감과 교육 당국 사이의 의견 충돌로 학생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했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는 “진보 교육감이라고 해도 학부모들 의사가 반영된 정부 정책은 적극 수용해 학생들이 편식 교육을 받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은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총은 논평을 통해 “이번 결과는 일방 독주 방식의 교육 정책 추진에 대한 엄중한 중간평가”라며 “왜 이러한 선거 결과가 나왔는지 진심 어린 반성을 통해 개선이 뒤따라야 할 대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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