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개성 없는 글래디에이터형 ‘로빈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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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3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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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로빈 후드가 탄생하기까지의 비화를 그린 영화 \'로빈 후드\'
의적 로빈 후드가 탄생하기까지의 비화를 그린 영화 \'로빈 후드\'
자신의 화살을 또 다른 화살로 쪼개는 신궁 '로빈 후드'. 신작 영화 '로빈 후드'를 보러가면서 달라붙은 타이즈에 깃털 모자를 쓴 셔우드 숲 속의 장난꾸러기 의적을 기대했다면 스크린에서 전혀 뜻밖의 주인공을 보고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많은 영화들의 소재가 된 영국 민담 로빈후드를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전작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러셀 크로우를 재기용해 전혀 새롭게 만들었다. 로빈 후드가 탄생하기까지의 비화를 그린 이른바 '로빈 후드 비긴즈'인 셈이다.

그러나 주인공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너무 비슷하다. 아울러 인간적 매력도 부족하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너무 다채롭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에 치중하다 보니 캐릭터들의 깊이 있는 심리 묘사가 결여된 점이 많이 아쉽다.

▶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

사자왕 리처드를 따라 십자군 원정에 나선 영국군들은 수십 년간의 무모한 원정길에서 고생하고, 백성들도 정부의 과도한 세금 징수로 피폐해진 생활 속에 고통을 받는다. 평민 출신으로 십자군에 참가한 로빈 롱스트라이드는 뛰어난 활 솜씨를 가지고 있는데, 왕에게 잘못 보이는 바람에 동료들과 묶이는 신세가 된다.

치열한 전투 중에 사자왕은 숨지게 되고, 혼란한 틈을 타 동료들과 탈출에 성공한 로빈은 왕관을 들고 왕의 서거를 알리러 가던 록슬리 경 일행이 프랑스 왕과 내통한 가드프리 경의 기습공격에 당한 것을 발견하고 그들이 남긴 재물을 어부지리로 얻는다.

로빈은 그곳에서 죽어가던 록슬리 경으로부터 자신의 검을 아버지에게 전달해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듣게 된다. 로빈은 록슬리 경으로 위장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리처드 왕의 서거를 왕실에 알리고, 동생인 존이 신임 왕으로 즉위한다.

이 와중에 로빈은 록슬리 경에게서 받은 검에 새겨진 '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라는 글에서 어딘가 신비하고도 낯익은 궁금증을 느끼고 그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

▶ 케이트 블란쳇의 인상적인 연기

억세고 용감한 록슬리 부인을 매력적으로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
억세고 용감한 록슬리 부인을 매력적으로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
원래 로빈 후드는 중세 영국의 민담에서 비롯된 허구다. 워낙 많은 영화나 TV 물이 다룬 이야기지만, 마치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백성들을 괴롭히는 부패한 정부 관리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의적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고 통쾌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차피 로빈 후드가 의적이 되기 전의 이야기이므로 이런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고 존 왕의 폭정으로 백성들이 고통 받는 난세에 영국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무찌르는 영웅의 스토리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케이트 블란쳇의 뛰어난 연기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대신하여 가혹한 세금을 징발하려는 정부 관리들에 대항하는 억세고 용감한 록슬리 부인을 블란쳇은 잘 표현한다.

특히 아버지의 명령으로 로빈이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자, 이 새로운 남자에게 관심과 매력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도도한 여인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매우 귀엽기도 하다.

▶ 전형적이고 개성 없는 영웅 캐릭터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별로 인상적인 부분은 없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주인공 로빈 후드의 개성 없는 캐릭터.

우리를 매료시키는 모든 영웅은 그 뛰어난 액션과 '영웅다움'도 중요하지만, 그 뒤를 받치는 개성과 인간적인 면이 더욱 중요한 매력이 된다. 대표적인 슈퍼 영웅인 '슈퍼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멋지고 잘생긴 크리스토퍼 리브가 '클라크'가 되어서 보여준 어수룩함과 유머 등 독특한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었다.

많은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했지만, 토비 맥과이어가 보여준 십대 소년 같은 유약한 개성은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매우 독특하고 매력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웅의 모습은 이런 신선한 개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로빈 후드'의 주인공은 기존의 로빈 후드의 이미지를 확실히 변화시킨 것은 맞지만 오히려 개악이라고 할 만큼 개성이 부족하고 전형적인 모습이다.

러셀 크로우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를 연상시키면서도 매사에 너무 심각하고 과묵한 모습으로, 심지어 록슬리 부인과의 애정 연기에서 조차 지나치게 절제된 모습만 보여주었다. 즉, 싸움과 활 솜씨에 뛰어나고 백성의 인권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만 부각될 뿐 이외의 매력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그의 전작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너무 비슷하다.
주인공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그의 전작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너무 비슷하다.

▶ 일관성 없는 존 왕과 박진감 위주의 전개

아울러 로빈 후드의 상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악역 존 왕의 캐릭터는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다. 형인 사자왕 리처드에게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많은 악동 같은 캐릭터로서 왕위에 오른 뒤 백성들의 고육을 짜내는 세금징발을 요구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영국을 노리고 있음을 알리는 왕비의 얘기를 갑자기 너무 쉽게 믿고, 제후들과의 회의에서 왕의 권리를 제한하는 권리장전에 서명할 것을 약속하고, 프랑스 군대와 맞설 때는 목숨을 걸고 앞서 달려나가는 등 일관성이 없다. 결국 깊이가 없이 영화의 스토리에 맞춰 왔다 갔다 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한심스럽다.

존 왕의 폭정에 저항하던 로빈 후드는 노팅엄 지역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내친김에 존 왕의 군대와 합류하여 해변에 상륙한 프랑스군에 맞서서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된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바로 이런 액션 장면으로 일관하는데, 워낙 많은 중세나 고대 전투씬들을 보아온 관객들에게 이 장면들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프랑스 군대의 상륙정은 현대의 해병상륙정과 너무 비슷해서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록슬리 부인과 셔우드 숲 속의 부랑소년들까지 합세해서 프랑스군에 대항해 싸우는 것도 드라마틱함을 넘어서 억지에 가까웠다. 폭군 존은 오히려 용감하게 군대를 이끌고 싸우지만 마지막에 영웅이 되는 로빈을 시기하게 되는 것도 어색하고 억지스럽다.

▶ 액션을 뒷받침하는 깊이 있는 진실성이 아쉬워

'로빈 후드'는 왕의 폭정에 맞서 백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영웅을 중심으로 중세 영국 시골의 소박함,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 거대한 공성전, 해변에서의 대전투, 기괴한 가면을 쓴 숲 속 부랑아들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섞어서 스펙터클하면서도 다채로운 영웅 스토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들을 너무 빠른 템포로 전개하다 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주인공이 너무 전형적이고, 깊이 있는 심리 묘사가 결여됨으로써 고대 로마나 중세시대를 그린 여러 전쟁 영화들을 짜깁기한 느낌만 줄 뿐이다. 숲 속 부랑아들의 가면 쓴 기괴한 모습은 영화 '잔 다르크'의 분위기를, 여타 장면들도 유사한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관객들이 바라는 것이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함일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어느 한 장면을 보더라도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진실성'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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