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종군취재]<2신>첫 임무, 40km 기지 밖 마을을 정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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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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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 “엉클, 원달러” 외치는 아이들 눈은 왜 그리도 맑은지…
“주변은 100% 지뢰밭”
새벽비 맞으며 긴장의 출동
출발땐 일부러 팝송 틀기도
엄지 치켜드는 아프간 주민
미군을 반기는 아이들
이들을 지키는게 국가의 임무

미군과 함께 ‘찰칵’ 우즈바시 마을에 정찰을 나간 미군 대위 주위로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몰려들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신호다. 탈레반은 주민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군과 함께 ‘찰칵’ 우즈바시 마을에 정찰을 나간 미군 대위 주위로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몰려들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신호다. 탈레반은 주민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고 아이
들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쾅쾅쾅.”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운영하는 종군기자 프로그램(Embed·임베드)에 참여하고 있는 기자가 묵는 ‘호텔 캘리포니아’ 방문을 누군가가 내리쳤다,

잠결에 시계를 보니 18일 오전 4시 50분(현지 시간). 문을 열었더니 존 휴이 중위였다. 기자의 임베드 프로그램을 지원·관리하는 책임 장교다. 간단히 인사를 건넨 휴이 중위는 “미스터 하, 첫 미션이 주어졌다. 10분 내에 출동준비를 마치고 나와 달라”고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뭘 하는지도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헬멧과 방탄조끼를 주섬주섬 착용하고 밖으로 나가자 휴이 중위는 쏜살같이 차량을 운전해 바그람 미 공군기지 북쪽 출입구 앞으로 내달렸다.

전날 밤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았다. 집결소에는 172기갑부대 1대대 찰리 중대소속 장병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미군이 타고 나갈 지뢰 및 매복방호용 장갑차 MRAP(Mine Resistant Ambush Protected) 5대도 시동을 걸었다. 작전에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신원 확인이 끝나고 필요한 무기를 지급하는 등의 절차가 마무리된 오전 5시 반경 지휘관인 크리스토퍼 브룩스 대위가 이날 미션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외부에 보안을 지키기 위해 필수인원만 사전에 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바그람 기지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외곽지역을 순찰한 뒤 기지 남쪽에 있는 우즈바시 마을을 찾아 마을 지도자들의 민원사항을 듣는 것이 오늘 임무다.

기자는 7명이 탑승할 수 있어 ‘버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대형 MRAP 탑승을 배정받았다. 차량 후미에 탑승하는 사람이 이용하는 해치 형태의 후문은 문짝 무게만 350파운드(약 159kg)나 된다. 기지를 벗어나기 직전 장비를 점검하는 사이 차 안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팝스타 빌리 조엘의 ‘업 타운 걸’이었다. 운전병에게 물어보니 “긴장을 풀어주는 노래”라며 “작전에 나가기 전에 즐겨 듣는다”고 말했다.

오전 6시 부대를 막 벗어나는 순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덧 폭우로 바뀌어 있었다. 부대 밖은 잡목이 무성한 게 남북 군사분계선이 놓인 비무장지대(DMZ)를 연상케 했다. 휴이 대위는 “이 주변은 100% 지뢰밭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한국근무 경험이 있는 그는 “판문점 캠프 보니파스의 골프장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장으로 불리지만 여기서도 골프공을 날려보면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람 기지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기지 남쪽으로 향하기를 10여 분. 도로가 보이면서 아프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폐허처럼 보이는 흙벽 속인데도 신기하게 구멍가게들이 있었다. 좌판처럼 돼 있는 곳에 음료수, 담배, 과자 등을 놓고 팔고 있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푸른색 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장갑차가 지나갈 때 대부분의 아프간인은 손을 흔들거나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오전 8시 무렵 드디어 우즈바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부터 미군들은 MRAP에서 내려 행군을 시작했다. 미군을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아프간 아이들이었다. 입구에서부터 30∼40명의 아이가 스스럼없이 미군의 행군 대열 속으로 파고들었다. 총을 들지 않았고 동양인이라는 친밀감 때문인지 기자에게도 아이들이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기자를 “엉클(아저씨)”이라고 불렀다.

주머니에 비상식량으로 넣어간 초콜릿이 잡혔다. 가까이 있는 아이에게 건네려고 했더니 새가 모이를 채가듯 집어간다. 이 모습을 지켜 본 휴이 중위가 웃으며 “큰일났다”고 한다. 무슨 뜻이냐고 묻기 전에 의미를 알았다. 순간 아이 10여 명이 기자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프간 아이들에게 미군은 뭔가를 주는 존재로 인식돼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즉석에서 흥정도 했다. 집에서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반지, 목걸이, 과자 등을 흔들며 “원 달러”를 외쳤다. 어떤 아이들은 집요하게 펜을 달라고 했다. 학용품이 모자라 그런다고 미군이 설명해 준다. 기자의 허리춤에 매달린 모자가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모양이다. 못 이기는 척 모자를 건네자 잽싸게 한 아이가 머리에 쓴 뒤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제러미 바버 중위는 “아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미군의 대공세에 맞서 싸우면서 아프간 사람들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는 탈레반도 아이들은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

오전 8시 반부터는 마을 회의실에서 마을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미군과 회의가 열렸다. 동네 이장격인 왈리 무함마드 씨는 우즈바시가 속한 파르완 주의 바시르 살랑기 주지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타지크 족인 살랑기 주지사가 파슈툰 족이 살고 있는 우즈바시 마을에 대한 지원에 인색하다”며 “미군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브룩스 대위는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아프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면서 “미국은 아프간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그람 기지로 돌아오는 내내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밭에서 나는 채소를 따먹고 흙장난을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30, 40년 전 우리 모습 같았다. 하루 종일 흙밭에서 뛰어놀아서인지 발바닥은 새까맣고 얼굴에도 땟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새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의 장래를 든든하게 보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글·사진 파르완 주 우즈바시(아프가니스탄)=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급조폭발물 방호용… 1대 빌리는데 10억원▼
■ 기자가 탄 MRAP는
한국, 10여대 임차
7월 파병부대에 배치

국방부는 미국에서 5∼7인승 특수지뢰방호차량(MRAP) 10여 대를 임차해 7월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 파병부대에 배치할 예정이다. 대당 임차 가격은 10억 원.

미국은 2007년부터 MRAP 770여 대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배치하고 있다. MRAP는 높은 차체와 V자형 차체 하단부 설계, 두꺼운 장갑판 등을 갖춰 급조폭발물(IED), 지뢰 등의 폭발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다.

IED는 일종의 사제(私製) 폭발물로 기존의 포탄, 폭탄을 위장해 원격조종으로 폭발시키는 방식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 도로변 경계석이나 쓰레기통, 페트병, 죽은 개 등 폭발물로 보기 어려운 물건들을 활용해 폭발물을 만들고 있다. 강력한 IED는 장갑차는 물론이고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A1까지 파괴한다. 반면 K-21 차기보병장갑차 등 국산 장갑차는 아직까지는 IED에 대한 방호력이 떨어진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군이 MRAP를 배치한 뒤 IED 피해율이 70%에서 10%로 줄었다”며 “IED를 원격조종으로 폭발시키는 무선전화의 주파수를 교란하는 장치 등을 활용하면 IED 위협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마을에 딱 하나뿐인 학교, 한국이 지어줬죠”
400가구 우즈바시 마을… 600여명 수업
KOICA, 직업훈련시설에도 55억원 지원▼

18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지역 순찰 도중 파르완 주의 우즈바시 마을에 있는 한국학교를 찾았다. 대략 4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학교가 딱 하나 있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교육을 담당하는 우즈바시초등학교 입구에는 ‘한국민들이 한-아프간 우정의 상징으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학교 건설을 지원했다’고 적혀 있다. 학교가 문을 연 것은 2005년 8월 31일.

단층건물인 이곳에는 학생 600여 명이 남녀로 나눠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이 관리책임자인 우즈박 씨의 설명. 오전 8시 반부터 11시까지 수업이 진행되며 교사는 12명이다. 문화적 특성상 남학생 10개 반과 여학생이 2개 반이 나뉘어 수업을 하며 8학년을 마친 뒤에는 바그람에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교실에 있는 칠판 우측 상단에도 KOICA가 기증했다는 표시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관리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 중에는 깨진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책상도 아이들이 올라간 듯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었다. 별도의 건물에 마련된 화장실은 한국의 1970년대 재래식 형태였다. 미군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방과 후라서 학교 정문이 굳게 잠긴 상태였다. 우즈박 씨는 “아이들이 장난이 심해 유리가 자주 깨지지만 교체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이미 6600만 달러를 지원한 KOICA는 지난해 2981만 달러를 지원한 데 이어 추가로 227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엔 아프간인 중 112명을 선발해 재난복구 등의 과정을 위한 국내초청연수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올해는 바그람 기지 내에 있는 직업훈련시설 지원금으로 55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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