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죄 위헌… 56년만에 역사속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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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부인”… 7년만에 6 대 3으로 결정 뒤집어

결혼을 구실로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남성을 처벌하는 혼인빙자간음죄가 1953년 제정된 형법에 포함된 지 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26일 결혼하겠다고 거짓으로 약속을 하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임모 씨(33) 등 남성 2명이 형법 304조(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낸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는 앞서 2002년 10월 같은 조항에 대해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을 7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형법 조항에 위헌 결정이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의 이날 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죄는 즉시 효력을 잃게 됐다. 또 형벌 관련 법규에 대한 위헌 결정은 이전에 처벌받은 것까지 소급해서 적용되기 때문에 1953년 이후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모두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한 사람은 형사보상금을 신청해 받을 수 있다. 지난해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된 사람은 25명이며 이 가운데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10명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날 “혼인빙자간음죄는 남녀평등을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에 반하며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고 있다”며 “이는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적, 성 개방적 사고의 확산으로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졌다”며 “이처럼 국민의 법의식이 변화해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형법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미미해졌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입법 목적과 달리 혼인빙자간음 고소 및 취소가 남성을 협박해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며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강국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남성이 혼인할 의사가 없으면서 결혼하겠다고 속이는 행위는 헌법이 보호하는 사생활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가벌성이 있으며 법정형도 지나치게 무겁다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혼인빙자간음죄:

형법 제304조(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僞計)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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