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영 vs 위탁’ 3년 넘도록 입씨름… 학생만 피해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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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학부모 열의따라 직영 급식의 질 들쭉날쭉
위생문제-비용증가 공방속 ‘직영 전환’ 획일적 법개정
운영의 묘 못찾고 허송

《학교급식법이 2006년 개정된 이유는 위탁급식 학교에서 대규모 식중독 환자가 발생하면서 ‘위탁급식업체의 식재료를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위탁급식 업체 CJ푸드시스템은 학교급식에서 철수했고 문제를 일으킨 학교에 직영화를 위한 시설 등을 무상 기증했다. 한 달 뒤인 같은 해 7월 모든 학교에서 직영으로 급식을 하도록 학교급식법이 개정됐고 3년간의 전환 유예기간을 주었다. 하지만 법 개정 후 3년4개월이 지났고 유예기간도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법 개정 당시 논란은 원점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 “학부모가 직접 봐야” “전문가가 봐야”

직영으로 급식을 운영하는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급식실로 들어오는 식재료를 학부모와 영양교사 등이 검수한다. 각 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채소, 쌀, 고기 등 품목별로 거래할 업체를 선정한다. 일반적으로 오전 6∼7시에 식재료가 배달되기 때문에 학부모는 자기가 검사할 차례인 날이면 아침 일찍 학교로 가야 한다.

직영으로 급식을 하는 서울시 A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만 학부모가 식재료 검수를 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 매일 새벽 각반 학부모와 교사가 돌아가며 학교 급식실로 들어오는 채소며 고기를 직접 보고 검수했지만 저마다 바쁜 아침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일주일에 4일은 식재료를 검수하는 사람이 없는 셈이다.

매일 검수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학교 급식회장인 학부모는 “검수한다고 해도 학부모 모두가 식재료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뭐가 좋고 나쁜지 가려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학부모는 “주위 몇 개 직영급식 학교의 사례를 보면 학교마다 학부모가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느냐에 따라 질이 높아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직영급식 관리는 영양사나 영양교사 1인이 하는 탓에 한계가 있다”며 “전문 업체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교사에 따라 성패 갈리는 직영급식

학교급식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의견 충돌이 가장 큰 것은 재정이다. 직영 전환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시설 개선비와 영양사 인건비는 교육 예산에서 지원하고, 직영급식은 완전한 비영리이기 때문에 더 우수한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고 설명한다.

반면 급식업체들은 같은 질이라면 위탁이 더 비쌀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직영 학교에서 kg당 2200원에 들여오는 김치를 우리는 1700원에 들여올 수 있다. 학교보다 훨씬 대량 구매하기 때문에 같은 재료라도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질 높은 급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내의 한 초등학교는 한 끼에 급식비를 300원 올리면서 모든 식재료를 친환경 농산물로 대체했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고 매일 식단에 오르는 김치도 친환경으로 바꿨다. 급식비가 오르는 것에 대해 불만인 학부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이 학교의 급식 개선 성공비결은 급식을 담당하는 교사의 열의에 있었다. 이 학교 김모 교사는 직접 식재료 업체를 돌아다니고 지방 원산지까지 찾아다닌 끝에 우수한 급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7년부터 직영으로 전환한 서울시내의 한 중학교는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위탁 운영 시 2700원이던 급식비는 직영 전환 이후 600원이 올랐다. 직영으로 운영하면서 발생한 손실을 급식비로 메우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급식비 이외에 학교 운영 예산까지 돌려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학부모단체인 ‘공교육을 위한 학부모연대’ 이경자 대표는 “교장선생님이나 교사가 운영을 잘하는 학교는 직영으로 전환해 질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학교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급식 사고, 위탁에서 많지만 직영은 은폐 있을 수도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가 발표한 최근 5년간 학교 식중독 발생 현황을 보면 직영급식 학교에서는 147건, 위탁급식 학교에서는 94건의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식중독 대란이 있었던 2006년을 제외하면 매년 직영급식 학교에서 식중독 사고가 더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위탁급식보다 직영급식을 하는 학교가 10배 정도 많기 때문에 발생률로 따지면 위탁의 급식사고 발생률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심했던 2006년에는 위탁급식의 발생률이 직영보다 10.3배 높았고 다른 해에는 위탁급식 사고율이 1∼3배 높다.

직영 전환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보고된 수치만 집계하는 학교급식 사고 통계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탁급식의 경우 책임 소재가 업체에 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바로 보고하지만 직영급식은 학교장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고는 보고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일 열린 학교급식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김춘년 전 대전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안전관리과장은 “식중독 사고는 직영과 위탁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지만 직영은 은폐되는 환자가 있을 수 있어 교육 당국이 발표한 식중독 통계는 믿기 어렵다”며 “위탁에만 책임을 돌리는 마녀사냥식 책임 회피가 법 개정의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 ‘무 자르듯’ 정하면 학생만 피해

서울 K고의 급식은 점심 직영, 저녁 위탁이다. 저녁은 위탁급식 업체에서 학교로 찾아와 직접 조리한다. 오후 5시 반에 시작하는 저녁 급식은 영양교사 퇴근시간 때문에 직영으로 하기가 어렵다.

1, 2학년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는 A 씨는 “지난해에 저녁을 배달로 할 때는 아이가 식은 밥을 먹었다고 해 속상할 때가 많았다. 위탁으로 바꾼 올해는 점심과 저녁 급식비가 같다고 해 또 걱정이었다. 같은 돈이면 위탁이 음식 품질이 떨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아이 말을 들어보면 점심과 저녁에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직영은 학교가 급식 주체라 이윤을 남길 필요가 없지만 위탁은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품질 저하를 우려했던 것이다. B 위탁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식자재를 대량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가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녁 급식을 하는 일반계고는 영양교사들에게 기피 학교로 손꼽히는 일이 많다. 월급에는 차이가 없지만 다른 학교보다 일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학 때 방과 후 수업을 하면 수당 없이 출근해야 하는 것도 영양교사들에겐 스트레스다. 실제로 지난해 일반계고 영양교사들이 서울시교육청에 대거 전근을 신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학생 수가 1000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는 점심 급식 후 정리를 마치면 저녁 급식을 준비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K고 교장은 “급식 방식에 정답은 없다. 직영도 완벽하지 않고 다시 위탁으로 돌아가자는 건 이미 드러난 문제를 없는 것처럼 하자는 것일 뿐”이라며 “학생들에게 양질의 급식을 제공한다는 원칙을 지켜 나가면서 학교 여건과 학교장 의지에 따라 선택권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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