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가을이야기] 열아홉 안치홍 “나는 행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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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7일 07시 00분


안치홍.스포츠동아DB
안치홍.스포츠동아DB
처음부터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지명 받은 팀에 입단했을 뿐인데, 모든 게 기대 이상으로 술술 풀렸으니까요.

프로 첫 해입니다. 대졸도 아닌 고졸 신인이고요. 아직 만으로 스무 살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풀시즌을 뛰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올스타전에도 베스트 멤버로 나갔습니다. 장소는 홈인 광주구장. 수많은 홈팬들의 환호 속에 홈런포를 쏘아올립니다. 신인으로는 첫 ‘미스터 올스타’랍니다.

입단 전엔 무뚝뚝할 줄로만 알았던 선배들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유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첫 스프링캠프부터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황병일 타격코치를 비롯해 코칭스태프와도 궁합이 척척 맞습니다. 지도자들과 트러블이 있었다는 몇몇 선배들의 귀띔은 딴 나라 얘기였나 싶습니다. 그 뿐입니까. 팀이 정규시즌에서 우승합니다. 12년 만에 처음이랍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행운의 연속. 감사하면서 살자고 매번 다짐합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릅니다. 서울고 시절, ‘야인’이 된 조범현 감독이 인스트럭터로 찾아왔을 때 말입니다. 감히 가까이서 말 걸기도 힘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슬쩍슬쩍 조언을 던져줍니다. 하나같이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물론 프로 감독과 선수로 다시 인연을 맺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지만 말입니다. 안타까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올스타전 최우수선수로 뽑힌 후부터 이상하게 몸도 마음도 마음대로 안 됐습니다. 자꾸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내심 욕심났던 신인왕도 점점 멀어집니다. ‘아쉽지만 올해의 행운은 여기까지. 이 정도로 충분해.’ 그렇게 마음을 먹습니다.

한국시리즈도 그랬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도 ‘보너스 경기’라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엔트리에 내 이름이 들지 않아도 좋다고, 팀이 우승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여기면서요. 하지만 서울에서 내려오신 부모님께 입장권을 건네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광주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한국시리즈. KIA 안치홍(19·사진)은 1차전 선발 2루수로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밟았으니까요. “경험이 부족하다고요? 선배들이 말씀하셨어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집중력이라고요.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광주|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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