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치영]지도자의 꿈 심어주는 美대학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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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240년 만에 첫 아시아인 총장으로 취임한 김용 17대 총장을 맞는 미국 다트머스대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다트머스대가 있는 뉴햄프셔 주는 나무들에 둘러싸인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중산층 백인들이 모여 사는 보수적인 곳이다. 캠퍼스에선 아시아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지만 거리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다. 다트머스대 역시 보수적인 학교로 유명한 곳이다. 아이비리그(미 동부의 명문 사립대 8곳을 일컫는 말)에서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이 대학은 소수정예 백인 중산층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여학생을 정규 학위과정에 처음 받아들인 때가 1972년이었다. 당시에는 아시아인이나 흑인 학생도 거의 없었다.

미국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라여서 한국인 총장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학생이나 주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김 총장의 취임식에 가보니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다트머스대 중앙 잔디광장에는 5000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노버 시의 인구가 1만 명이 조금 넘으니 작고 조용한 도시가 김 총장의 취임식으로 들썩였던 셈이다.

학생들이나 교직원, 교수들과 얘기를 나눠 봐도, 주민의 얘기를 들어봐도 이들이 얼마나 김 총장의 취임에 흥분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들이 김 총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트머스 학생들을 김 총장처럼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로 키워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김 총장이 아이비리그 첫 아시안 총장이라는 사실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만 김 총장과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를 총장으로 맞이한다는 데 흥분돼 있었다. 의사로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빈민국의 질병 퇴치에 몸을 바쳐 온 ‘인도주의자’ 총장이 그들을 설레게 만든 것이다.

취임식 전야제가 열린 지난달 21, 22일 이틀간 다트머스에 머물면서 기자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리더십’, ‘지도자’였다. 취임식 하루 전날 김 총장의 취임을 기념해 열린 포럼의 주제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리더십’이었다. 아이비리그 첫 흑인 총장인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 총장, 경쟁전략 분석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 다트머스대를 졸업한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과 찰스 홀드먼 프레디맥 최고경영자(CEO), 김 총장과 질병퇴치운동을 함께 벌여온 폴 파머 하버드대 의대 교수 등 미국 각계의 지도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들은 한결같이 “김 총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다트머스 학생들을 김 총장과 같은 지도자로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다트머스대만이 아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너희들이 앞으로 미국뿐 아니라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인공이다’, ‘너희들은 세계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지도자들이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사회를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다트머스대에서 만난 학생들도 ‘김 총장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학생 시절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는지 배우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학생들을 보면서 지금도 도서관에서 취업공부에 매달리고 있을 한국의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한국의 학생들도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도자의 꿈을 심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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