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연호]우리도 민간 싱크탱크 키워야

  • 입력 2009년 8월 29일 02시 59분


유능한 민간 싱크탱크의 존재는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민간 싱크탱크는 다양하고 심층적인 지식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부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도록 기여한다. 정부가 관료화된 발상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도와준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과시하는 이유는 군사력 외에도 지식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싱크탱크를 갖고 있다는 점보다는 가장 많은 독립적 민간 싱크탱크를 보유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간전문가가 싱크탱크를 통해 정부에 지식을 제공하며 정책수립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한다. 정부는 민간전문가의 능력을 인정하고 전문성을 신뢰한다. 싱크탱크를 통해 민관학의 지적협력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도출한 정책은 객관적이며 질적으로 우수하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는 국책 싱크탱크보다 정책결정과정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에도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이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싱크탱크가 존재한다. 대부분 국책연구기관이다. 정부가 재정적 인적 통제권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객관적이고 창의적인 정책지식보다는 관료의 입맛에 맞는 정책지식을 산출하는 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관할 정부부처가 정책수립경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론적 무장을 제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민간 싱크탱크가 등장했다. 수적으로만 본다면 민간 싱크탱크의 주축을 이루는 시민권익 옹호형 싱크탱크와 학술정책형 싱크탱크가 국책 싱크탱크를 압도한다. 그러나 민간 싱크탱크의 재정적 그리고 인적 자원은 국책 싱크탱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고정적인 재정 수입원을 확보하지 못하며 상임연구원이 전무한 연구소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정적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나마 정부가 발주하는 용역에 의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정이 이러니 민간 싱크탱크로서의 기관적 독립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참여도 미미하고, 있다 해도 모양 갖추기에 불과하다.

민간 싱크탱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부문화나 이에 관련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미국에서 독립적 민간 싱크탱크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록펠러 같은 뜻있는 개인의 대규모 기부행위가 있어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익적 기부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 공무원에 의해 사실상 독점된 정책과정을 좀 더 개방적으로 만드는 국가적 차원의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 관료제가 정책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독점하면서 정책결정 과정을 장악할 경우 정책수립에 필요한 지식을 내부적으로 충당할 개연성은 증가한다. 아울러 민간 싱크탱크로부터 아이디어를 공급받을 이유는 상대적으로 감소하며 이는 민간 싱크탱크의 저발전으로 이어진다.

민간 싱크탱크의 정책참여는 국가 전체의 이익이 관료적 이익에 의해 장악되는 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시민사회의 비전문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여과되지 않은 채 정책과정에 투입되는 일을 예방하는 데도 기여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정책수립 및 결정보다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정책과정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강한 국가는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정부 혼자 만들지 못한다. 질 높은 참여라는 전제하에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간다. 국가의 곳곳에 존재하는 정책 자원이 효율적으로 취합될 때 강한 국가가 수립될 수 있다.

이연호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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