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라이벌의 미학’이 그리운 대한민국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며칠 전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인사와 자리를 함께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최근 통합한 토지주택공사 사장 내정자 인선에 화제가 이르렀다. 자신의 장관 시절 실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은행장과 공기업 사장을 교체할 때가 되면 귀신같이 알고 수십 통의 투서가 난무한다. 추적해 보면 대개는 경쟁자들이 상대방을 흠집 내기 위해 퍼뜨린 내용이 태반”이라고 혀를 찼다. 전직 장관은 투서 등을 원격조종한 경쟁자를 후보군에서 영원히 퇴출시켰다는 얘기도 했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강(river)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부족들이 대치하면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여기엔 불문율이 있었다.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상대를 죽이기 위해 강물에 독을 타지 않는다는 것. 독을 타면 자신도 그 물을 마시고 죽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라이벌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세계적 사이클 선수 얀 울리히. 1997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에 이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독일의 영웅이었다. 그 후엔 미국의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의 그늘에 가려 준우승만 3차례 하며 ‘만년 2인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때는 찾아왔다. 2003년 투르 드 프랑스 결승점을 9.5km 앞둔 지점이었다. 선두는 또 암스트롱. 15초 차로 뒤지고 있는 울리히가 바짝 따라붙었다. 그때였다. 암스트롱이 구경나온 어린이의 가방 끈에 핸들이 걸려 넘어졌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그런데 넘어진 암스트롱을 추월한 울리히가 갑자기 속도를 늦췄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뒤를 돌아보면서 암스트롱을 기다렸다. 다시 페달을 밟은 것은 암스트롱이 넘어졌을 때 거리만큼 자신의 앞으로 갔을 때였다. 마지막 9.5km의 숨 막히는 접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암스트롱의 승리였다. 당시 언론은 울리히의 기다림을 ‘위대한 멈춤’이라고 감동적으로 적었다.

현실에서는 왜 스포츠 같은 ‘라이벌의 미학’이 들리지 않는 걸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YS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감회에 젖었다. 기자가 분향소를 찾았을 때 “두 분이 빈소에서처럼 평소에 상대방을 존중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귓전을 때렸다. 라이벌 관계는 주로 유력인사들의 무한경쟁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건 그들의 이전투구가 그들만의 쇠락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급 인사들에게 ‘울리히의 기다림’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이 때문이다.

김동원 국제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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