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혜숙]학자금대출, 美시행착오서 배우자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대통령이 직접 설명에 나섰던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서민층 가계의 어려워진 여건, 연간 1000만 원을 넘나드는 대학등록금으로 교육비 부담이 가중되는 시점이어서인지 여론의 호의적 반응과 기대를 얻은 듯하다. 대학 학자금 대출제도는 1960년대 이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진화를 거듭했지만 부모가 아닌 학생 본인이, 그리고 갚을 여력이 되는 시점부터 상환하는 선진국형으로 바뀌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하지만 재원 확보, 저소득층 학생 지원 등 이미 제기된 문제 외에도 과연 신생조직인 한국장학재단이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지, 법적·재정적 뒷받침을 어떻게 할지, 세부계획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지 등 전문적 검토와 의견수렴을 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꼭 짚고 넘어갈 점은 선진국도 사업의 방대성, 기술적 어려움, 관련자의 도덕적 해이, 부도율 급증의 문제로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대학진학률이 우리나라 다음으로 높은 고등교육 보편화 국가라는 점에서 1980년대 이래 등록금이 급격히 인상된 가운데 학자금 지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됐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행착오 끝에 학자금 지원 정책 및 대출제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제도는 학생, 대학, 보증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와 그에 따른 높은 부도율로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대출 확대는 부도율 급증으로 이어졌고 1990년에는 22.4%라는 위험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 정부는 관련 주체의 도덕적 해이가 주원인이라는 진단하에 1991년부터 사후관리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상환을 하지 못해 파산 신청을 하는 학생에 대해 학자금 대출채권을 면책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않고서는 파산승인조차 받지 못하도록 했다. 또 대학별 부도율에 따라 불이익을 줬다. 즉 대학 선배가 상환을 못해 부도율이 높아지면 후배들은 더는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일종의 연대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대학은 대출금 액수, 상환계획이 적절하게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교육 지도 관리하는 변화를 보인다. 보증기관에 대해서는 그들의 1차 보증에 대해 정부는 100%가 아닌 최대 95%만 부분 보증함으로써 대출 채권의 대손위험에 대비하여 철저히 사후관리를 하도록 유도했다. 이처럼 엄중한 방식으로 정책 전환을 해 부도율을 1993년 11.6%, 2003년에 가서는 4.5%로 현저히 낮췄고 현재까지 5%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대출자와 대출금액이 많아질수록, 유예 및 상환기간이 길어질수록 효과적 관리를 위한 비용이 엄청나게 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교육부 산하에 계약직을 포함한 5000명 규모의 학생지원국이라는 전담기관을 만들었으며 직원 7500명 규모의 학자금대출 유동화 담당 전문회사가 따로 있어 기금의 활용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1차 보증기관과 대학의 대출 업무 인원까지 합치면 제도 운영을 위한 인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어떻게 최소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 나온 제도는 미국과는 달리 너무 획일화된 접근을 취하는 것 같다. 대출을 늘리고 그중에서도 이자를 보조하지 않는 방식의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보조금, 근로장학금 등 다른 형태의 학자금 지원도 적절한 구성으로 유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대출자격, 대출한도, 이자율, 이자에 대한 보조, 보증방법, 상환기간, 상환방법 등 세부 사안도 합리적이고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시작도 안했는데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느냐고 하겠지만 정교하지 못한 제도를 초스피드로 시행하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준비를 강조하고 싶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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