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출구’ 찾아준 출구전략 논쟁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경기 추락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작심하고 돈을 풀어댄 정부도 내심 후유증을 걱정하던 터였다. 뭉칫돈이 증시와 부동산을 옮겨다니면서 자산가격에 거품이 생기는 조짐이 감지됐다. 경기침체라는 악령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는가 했더니 버블이라는 괴물이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년 전 경제가 최악일 때는 앞만 보고 달리면 됐는데 지금은 전후좌우 살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의도했던 대로 경기부양 효과만 챙기고 버블의 늪에서 슬기롭게 발을 빼는 묘안은 없을까. 배부른 푸념으로 비칠 것을 염려해 누구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지금의 경제해법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한 회의론이 슬금슬금 퍼져나갔다. 7월 21일 “출구전략(Exit Strategy) 실행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언은 이런 시기에 나왔다.

KDI의 문제의식은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쏟아낸 비상조치의 정상화를 뜻하는 출구전략은 해외에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언급할 정도로 이미 공론에 부친 상태였다. 올해 초만 해도 낯설게만 느껴졌던 이 용어의 사용 빈도는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하지만 권위를 인정받는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정책방향과 결이 다른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그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보기 드문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대세는 연말 이후 경기가 온전히 살아난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나 출구전략을 써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정부 견해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어느 정도 결과를 예견했으면서도 일련의 논쟁을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은 ‘제언 이후의 KDI’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경기회복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는 정부로서는 유동성 공급 과잉의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연구기관이 정부와 다른 의견을 냈다가 유무형의 질책과 항의에 시달리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흔한 장면이었다. 유달리 분배를 강조하던 정권에서는 연구기관이 소득 통계를 근거로 빈부격차가 심해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관료들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이번에 출구 논쟁을 촉발시킨 KDI의 담당자가 정부에서 언짢은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부의 일부 관료들은 사석에서 “KDI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적을 했다”고 평가했다.

토론이 거듭되면서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다. 부동산시장 안정대책도 서둘러 손질하기 시작했다. 경제주체들은 실물지표 호전이 민간의 자생적인 회복이 아니라 대규모 재정 지출에 따른 인위적인 회복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 머지않은 장래에 당국이 유동성 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염두에 둘 것이다.

전문가는 소신껏 문제 제기를 했고 정책 책임자는 여러 의견을 경청해 방향을 정했다. 서로 다른 시각이 충돌해 토론의 장(場)을 형성하고, 그 결과가 경제정책에 반영되는 건강한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유능한 소방대원은 불을 끄러 들어갈 때 출구부터 챙긴다”고 했다. 출구 논쟁을 벌이던 참에 출구가 어디인지까지 눈여겨봐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논쟁이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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