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부작용 만만찮은 ‘정규직 전환 지원금’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7분


“정규직으로 뽑을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뽑은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공짜 혜택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영세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 사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1185억 원)에 대해 이렇게 우려를 표시했다.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 당초 취지와 달리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채용시장의 왜곡을 가져오는 등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

종업원 5∼10인 규모의 영세사업장은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구두 계약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근로자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부는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530여만 명) 중 30%(170여만 명) 정도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업주와 근로자만 입을 맞추면 사실상 정규직이 지원금을 받거나 2년도 안 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지원금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지원금이 채용시장의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사업주는 1인당 매달 약 25만 원(이 중 7만 원은 4대 보험료 감면 형식)을 1년 반 동안 비용보전 개념으로 받게 된다. 원래 정규직으로 직원을 채용하던 회사들이 일단 비정규직으로 뽑은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수순을 선택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 지원금이 정규직 전환 독려가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독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지원금 지급이 끝난 후 회사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 방법이 없다는 점도 이 제도의 맹점이다. 임금은 회사 수익과 비례하기 마련. 회사 상황이 전과 마찬가지여서 지원금만큼의 비용을 더 줄 수 없을 경우 임금 하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제는 법적으로 모두 같은 정규직이어서 지원금으로 월급을 보조받던 정규직 근로자들(기존 비정규직)만 임금을 낮출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낮출 경우 기존 정규직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본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현재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도 애초에는 좋은 동기로 시작한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모든 제도에는 명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부작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그 좋은 취지조차 실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권과 정부가 지원금 조기집행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이진구 사회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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